조사ㆍ글 : とちぎあきら, 岩崎ゆう子

영국영화협회(BFI)의 개설과 활동

영국의 영화진흥책과 공공상영과의 관계는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10월 25일 런던의 한 극장에서 Film Society(필름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첫 상영회가 개최되었다. 필름소사이어티는 1913년에 발족된 단체로, 영국영화검열위원회(British Board of Film Censors)에서 상업영화관에서의 상영 허가를 받지 못한 유럽이나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영화 등을 자주적으로 상영ㆍ배급하는 일을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이다. 필름소사이어티에서는 영화 상영뿐 아니라 프린트도 수집, 후에 렌라이 처녀작 제작도 했다.
그러나 1940년 아인슈타인의「알렉산드로 네프스키」상영으로 인해 런던의 필름소사이어티는 활동을 접었으나, 그 시기까지 영국 전역에는 필름소사이어티라 칭하는 상영단체가 이미 생겨나 있었다. 이들 46개 단체들은 1945년 가맹에 의해 영국필름소사이어티연맹(British Federation of Film Societies)을 결성하였다. 이러한 필름소사이어티의 활동을 국가 차원에서 계속적으로 지지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영화ㆍ영상보급사업의 하나로써 채택한 것이 영국영화협회(British Film Institute:BFI)이다.

영국영화협회는 1933년에 국왕의 칙허(Royal Charter)에 의해 설립된 자선사업단체로서, 1948년 회사법에 의해 법인자격을 얻은 조직이다. 재정 측면에서 보면 반은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반정부반민간 단체이나, 운영에 관해서는 정부의 간섭을 받지않는 독립법인이다. 이러한 취지는 영국 전역을 대상으로 영화ㆍ영상의 이해와 감상력을 향상시키고 접하는 기회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해 왔다.

물론 70년 가까운 기간동안 BFI이외에도 많은 기관이나 조직이 공공상영과 관련 있는 제작ㆍ배급ㆍ상영 영역에 등장, BFI와 협력 또는 독자적으로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 역사를 잠깐 살펴 보자.
필름소사이어티연맹이 결성된 1945년에는 아트카운실이 발족하여 이듬해 법인화되었다. 아트카운실은 전편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전 영국차원에서 예술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촉진하여 대중의 예술접촉 향상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등장했다. 아트카운실은 모든 예술에 대해 공적 지원하는 중심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당초 영화나 영상분야의 지원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60년대가 되면서 실험영화와 개인영화 제작이 활발해져, 66년에는 영화작가단체가 생기는 한편, BFI가 실험영화기금을 제작부(BFI Production)에 개조한 즈음부터 정세가 바뀌어, 아트카운실 내에 만들어진 영화위원회가 69년 처음으로「아티스트필름」에 조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76년에는 유능한 영화 작가들을 전국에 소개하는 순회 프로그램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또한 아트카운실과 함께 80년 이후 예술적, 문화적 경향이 강한 영화의 제작ㆍ상영을 강력하게 서포트하게 된 것이 82년에 개국한 민영방송국, 채널4이다.

한편, 상영에 관해 말하자면 1951년 ‘세계 문명에 대한 영국의 공헌’을 현장하자는 목적으로 개최된「The Festival of Britain」에서, 그 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한 회장인 “텔레시네마”가 이듬해 “내셔널필름시어터”로 개편했다. 이것이 BFI 상영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또「아티스트필름」의 상영은 이미 46년에 실험영화 작가와 런던 아트시네마 아카데미의 경영자들이 근대미술관 설립을 위한 조직위원회를 구성, 이듬해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가 설립되어 48년 2월부터 전람회와 함께 산발적으로 영화 상영을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BFI에서는 88년에 필름 이외의 영화관련자료를 보존ㆍ전시하는 영상박물관을 개관하였고, 99년에는 IMAX영화관을 오픈, BFI의 박물관부가 이 두 곳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 전모를 통해 현재의 BFI에 이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