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음주 스타일의 변천과 주류산업의 영고성쇠

 

글 : 쓰지 히로시 (술 문화연구자_전 TaKaRa 酒生活文化研究所)

 

경사스러운 날, 곤드레만드레 취할 때까지 니혼슈(일본고유의 술)를 즐겼던 전전(戦前)
술에 있어서 일본의 20세기는 양주 국산화의 세기였다. 메이지(明治) 이후에 도입되었으며, 20세기 초 맥주, 와인, 위스키로 대표되는 양주의 소비량은 2.5%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의 전통적인 국민술은 니혼슈이며, 쇼와(昭和) 초기까지 소주는 조연에 불과하였다. 니혼슈는 일본인의 주식인 쌀을 원료로 한 「술」이라는 의미에서 특별한 존재였다. 전전에는 쌀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못하여, 일반 서민은 일상적으로 쌀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일본의 음주 스타일은 경축일이나 마쓰리 등의 경사스러운 날, 정해진 장소에 공동체의 멤버가 모여, 신에게 성찬과 함께 니혼슈를 봉납하였고, 나오라이(直会)라는 연회를 열어, 봉납하고 물린 음식을 먹고 마시는 형태였다. 이 연회 후, 열리는 향연에서는 멤버의 일심동체와 마음을 소통하게 하기 위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니혼슈를 곤드레만드레 취할 때까지 마셨다.
메이지・다이쇼기(大正期)에는 도시의 번화가와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는 일상적인 사교를 위하여 니혼슈를 마시기도 했지만, 기호품으로서 홀로 즐기기도 했다. 이 시대, 일본인의 술 소비량은 비약적으로 늘었는데, 그 주체는 일하는 남성이면서 가장인 남성이었다.
맥주산업은 당시 유럽의 첨단기술이었던 냉동기, 미생물의 순수배양시스템, 그리고 저온살균장치가 일체화된 생산체계를 도입하여, 저온살균 맥주인 라거맥주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기초를 구축했다. 맥주의 수요는 비야홀(호프집)로 대표되 듯, 도시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확산되어 1938년(쇼와13)에는 니혼슈의 약 3분의 1의 생산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포도생산이 전제로 되어 있는 와인제조에 있어서는, 아직 쌀로 빚은 술이 주역이었던 일본에서는 그 맛을 수용할 여지가 없었고, 농업으로서의 재배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약 500년의 소주의 역사가 태동한 것은 1910(메이지43)년에 해외에서 도입된 연속식증유기에서 제조된 신식소주의 등장 이후부터다. 신식소주의 경쾌한 맛과 경제적인 가격, 그리고 쌀부족 시대에「쌀을 원료로 하지 않는 술」이란 점이 많은 술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신식소주는 순수한 알코올을 추출하기 위한 구미의 증류기술의 산물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 신식소주는 양주의 계보에 위치하는 것이다.

니혼슈에서 맥주, 위스키, 소주로
이와 같은 전통적인 음주문화는 전시통제경제의 배급제도하에서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1938(쇼와13)년부터 술 소비량이 감소하기 시작함에 따라, 서민은 거의 대부분의 술을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후 직후의 식량부족현상으로 술의 원료인 쌀, 보리, 고구마마저도 식료로서 소비되게 됨에 따라, 1948(쇼와23)년의 과세반출수량이 20세기동안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전후 10년간은 술 기근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원료통제가 완화된 고구마를 원료로 하여 갑류소주1) , 위스키, 합성청주2)가 정세가 불안한 시대에 취하기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대량으로 소비되었다. 이 시대에는 탄산수로 희석한 소주인「추하이」가 도쿄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정착되어갔다. 마시는 이의 취기를 만족시킨 갑류소주는 쇼와30년대 중반에 술소비의 첫번째 정점을 기록하게 된다.
원료공급이 안정되고 생산체제가 정비되자, 맥주산업은 생산량을 확대하였으며 1959(쇼와34)년에는 니혼슈의 생산량을 뛰어넘어, 맥주의 대중화를 맞이하게 된다. 한편, 니혼슈는 원료통제아래, 생산량 증가에 고난을 면치 못하다가 1961(쇼와36)년에 1938(쇼와13)년의 수준을 회복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품질은 곧「맛」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 생산량은 곧「취하기」라는 관계가 우선적으로 반영되었던 사실은, 후에 나혼슈를 멀리하는 데에 힘을 실어 주었다. 특히, 쇼와10년대 중반에서 30년대 중반에 술을 마실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한 사람들, 즉 일본의 술문화를 이끌어 왔던 이들은 술문화를 수용하는 추축이 되지 못한 채, 차세대에게도 술문화를 전수할 수 없는 세대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술 소비량이 계속 늘어나는 고도경제성장기를 지탱해왔던 술소비자이기도 했다. 일본의 술문화와 무관했던 그들은 맥주, 위스키, 소주를 선별하여 전전부터 저장해왔던 맥아(麥芽)를 브랜드화하여 독자적인 맛의 위스키를 제조하였고, 이것은 당시 서양의 라이프스타일에의 동경과 맞물려 그 세대의 술로서 지지를 받게 되었다. 위스키는 1974(쇼와49)년에 소주의 소비량을 뛰어넘어 쇼와50년대 중반에 절정을 맞이한다. 물론, 고도경제성장기에는 대량의 니혼슈와 맥주도 쇼와10년대 이전부터 술기근을 경험한 세대에 의해 소비되었다. 소위 만들면 팔리는 시대였다.

 

음주의 일상화, 다양화, 민주화
전후 60년이 넘는 음주문화의 특징은 다음의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음주의 보편화, 다양화, 그리고 민주화이다. 음주의 보편화란, 고도경제성장기를 거쳐 가정의 인프라가 정비되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짐에 따라, 축일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맥주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간자케(데운술)와 물로 희석한 위스키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을 말한다. 이 시대는 여전히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 회사의 동료와 상사가 짧은 순간이라도 마음을 통하게 할 수 있는 소위 취하기 위한 음주를 즐기는 경향이 강했다. 더욱이 쇼와30년대 이후에는 맥주, 위스키, 와인, 리큐르3), 스프리츠(Spirits), 소흥주4) 등의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일본산 주류를 포함한 주종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쇼와50년대 일본인의 음주문화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여성의 음주참가를 들 수 있다. 일본의 근대화 이후, 고도경제성장기의 기업전사들의 만취문화까지는 남성이 음주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됨에 따라, 여성의 음주참가는 곧 음주의 민주화라는 의식이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자카야붐이다. 여성들은 전통적인 이자카야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풍부한 서양식의 메뉴가 제공되며, 청결하고 밝은 이자카야 체인점에서 추하이를 즐겼다. 건강지향 그리고 서로 다른 음주형태를 즐기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이자카야 체인점에서는 온더락 혹은 물을 희석하여 마시는 등, 다양한 음주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갑류소주가 믹스를 기본으로 대량 소비되면서 추하이붐, 소주붐으로 결실을 맺었다. 추하이는 과즙과 청량감이 넘쳐흐르는 입맛 당기는 저알콜 드링크로, 자신들만의 술을 요구하는 음주 초보자인 여성층과 연소자층의 지지를 얻었다. 고도경제성장기의 그들처럼 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거나하게 취한 상태를 즐기는 음주스타일이 후에 주류를 이루게 된다.

 

술의 소프트드링크화와 거나한 취기를 즐기는 음주문화    
1975(쇼와50년)년을 정점으로 니혼슈의 소비량이 장기하락양상을 띠게 된다. 일각에서 소주(갑류소주・본격소주)는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위스키의 소비량도 하락세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새로운 술은 새로운 술주머니에」라는 말이 있듯이, 음주 초보자는 자신의 세대에 맞는 새로운 술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음주스타일은 깊게 파고 들기 때문이다. 니혼슈의 소비량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 것은 니혼슈문화가 깊게 파고 들지 못했던 세대가 쇼와50년대 이후, 음주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괴세대5)이기도 한 차세대는 소주와 추하이를 자신들의 세대의 술로 만든 것이다. 한쪽에서는 긴죠자케6)로 상징되는 지자케7)의 복권, 즉 니혼슈의 「맛」을 재구축하려는 활동이 일었다. 그것은 후의 산지소비운동과 슬로후드운동8)으로도 이어졌다.
쇼와50년대 후반부터 수년간, 맥주도 새로운 음주형태의 대열에 들어섰다. 맥주는 저알콜도수로 탄산이란 상쾌함을 주며,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로서 세계적으로 소비되어가는 문명적인 술이다.
병맥주가 주류가 된 시대에도 여전히 맥주는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과 술로서의 소임을 다해왔다. 한편, 이 시기는 추하이붐과 오일쇼크로 인하여 맥주소비가 포화상태가 된 시기이기도 했다. 그 후, 자동판매기에 의한 캔맥주의 보급으로 언제 어디서고 차가운 맥주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맥주를 마시는 TPO9)가 확연하게 바뀌게 되었다. 「술」로서의 맥주가 「물대용」,「소프트드링크」로서 인식되게 된 것이다.
추하이붐처럼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즉 술을 매개로 하는 음주스타일이 정착하기 시작하여 맥주의 소비는 1994(헤세6)년에 정점을 기록한다. 그 후,「발포주10)」「제3맥주11)」가 헤세10년대 추하이의 비약적인 신장과 함께 술의 소프트드링크화를 급속하게 진행시겼다.

 

술소비에 양극화 현상이 일고 있다

헤세에 들어서면, 술 소비에 있어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맥주를 비롯한 저알콜음료의 범용화가 진행되는 한편, 일본인의 음주스타일은 술의 맛을 음미하고, 술을 즐기는 스타일로 변화하게 된다. 또한, 디지털사회로의 급속한 진행 속에서 가상의 관계가 되기 쉬운 일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실질적인 관계를 맺는「술이 있는 식탁」의 중요성은 증대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술과 식(食)을 함께 즐기는 구성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에 있다. 그리고 캐쥬얼하게 식사를 즐기며 와인을 음미하는 스타일이 보편화되었다. 일본의 음주문화에 와인이 뿌리를 내리는 순간이다.
게다가 술의 맛을 음미하는 술고객에게는, 풍토에 기인한 이야깃거리가 있으며, 원료유래의 개성 있는「맛」이 특징인 와인을 비롯하여, 증류식 소주인 본격소주, 몰트위스키, 상파뉴, 매실주, 지자케(니혼슈) 등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남규슈의 지자케였던 본격소주는 기술혁신을 배경으로 한 세련된 맛이 도시의 여성들에게 평가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소주의 붐이 일어난 2002(헤세14)년에는 소주 소비량이 니혼슈를 역전하게 된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보편화되고,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글로벌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에서는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술의 맛을 즐기는 일본인의 음주스타일은 매일 매일의 생활에 감촉과 실감을 구하는 사람들과 특히 여성의 리드로 더욱 더 성숙되어 갈 것이다.
쇼와에서 헤세에 걸쳐 일본의 인구는 약 2배로 증가했다. 술의 소비량이 7배 규모가 되었으므로 1인당 음주량은 3.5배로 증가했다는 계산이 된다. 그리고 요즘 일본인의 술 소비량의 약 85%정도가 맥주, 발포주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주로 분류되고 있다. 이 80년간 일본인의 음주문화의 주축은 니혼슈에서 맥주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석

1) 증류를 거듭하여 불순물을 빼낸 깨끗한 술
2) 알코올에 당류, 유기산, 아미노산 등을 첨가하여 청주와 같은 맛을 낸 술
3) Liqueur:스프리츠에 향기,색,단맛을 첨가한 혼성주
4) 중국의 소흥(紹興)지방에서 만드는 곡식 발효주
5) 1947년부터 1951년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일본 제1차 베이비뭄 세대의 별칭
6) 50%이하의 도정미를 사용하여 양조알콜을 쌀중량의 10이하로 넣어 장기간 양조한 술
7) 그 지역에서 양조한 술
8) 10여년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그 토지에서 획득한 안전한 먹거리, 그 계절에 수확한 신선한 먹거리, 질 좋은 음식을 지키려는 운동
9) 때:Time와 장소:Place, 상황:Occasion
10) 주류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주액에 함유되어 있다가 병마개를 따면 거품이 나는 술 종류로 대표적인 것으로 샴페인이 있다.
11) 맥아를 사용하지 않은 맥주맛 음료와 리류크제품을 통칭하는 것으로, 발포주나 맥주에 비해 주세가 낮으며 맛과 향은 맥주와 큰 차이가 없다.

 

쓰지 히로시(辻宏)

기후현(岐阜県)출생, 와세다대학 졸업 후, 18년간에 걸쳐 주조회사에 근무. 영업, 마케팅, 주생활문화연구소의 각세션을 담당했다. 연구소에서의 주요한 연구테마는,「蒸留酒文化」「酒から見た日本のライフスタイル」「地域社会と酒」등이 있으며, 공저로는『焼酎 東回り西回り』『ABCDSマトリクス』가 있다.  

 

「をちこち」제17호(June./July.'07)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