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26)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는 테사 모리스 스즈키씨의 수필을 전재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

(호주국립대학 교수)

일본을 방문하면 아무래도 일정이 길어지게 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학회가 있을 때 학회 종료 후, 바로 귀국하므로 단순히 거리상의 문제 만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도 연재에 쓴 적이 있는데, 도쿄에서 준비된 숙소에 장기간 체재하고 있으면  차츰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대학이나 도서관과 숙소를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실수를 하지 않을 만한 일도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가능하면 바닷바람을 맞고 싶고 바람이 잦아든 저녁 해변가를 샌들을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보고 싶어 진다. 기분 전환을 하고 나면 다시금 집중력도 돌아온다. 결국 그렇게 하는 편이 연구 효율에도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숙박을 할 정도의 여유가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서 가까운 산에 당일치기로 간다. JR하토노스(鳩ノ巣) 역에서 내려 하토노스 계곡을 걷는다. 다마가와(多摩川)가 간토 산지를 깊게 침식하여 형성된 계곡이다. 시로마루 호수까지 산책길이 정비되어 있다. 다마가와의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물에서 논 적도 있다. 11월에 이곳을 찾으면 불타는 단풍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토노스 고하시라고 불리는 다리에서 이 계절에 계곡을 바라보고 있으면, 상록수와 노랗고 붉은 잎들이 뒤섞여 순간 숨이 멈춰버릴 만큼 아름답다.

 

해발 929미터의 미타케산(御岳山)에 오른 적도 있다. 도쿄도 오메 시내에 있는 산이라고 너무 가볍게 생각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 안전확보를 위해 매어놓은 쇠사슬이나 너덜겅도 있는 본격적인 등산인 것이다. 산 정상 가까이에 무사시미타케 신사(武蔵御嶽神社)가 있는데, 야마토다케루노미코토(日本武尊)가 동정(東征) 때에 흰 늑대에게 이끌려 난을 면했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헤이안시대의 엔기시키진묘초(延喜式神名帳)라는 문서에도 기재되어 있는 신사이다.

폭이 1미터가 조금 넘는 등산로는 젖어 있으면 미끌어지기 쉽다. 한쪽은 거의 벼랑이거나 급경사이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말이면 등산객이 많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조금만 더 가면 산 정상이니 힘내세요.” 라고 말을 건네면서 가볍게 나를 추월해 간다.


산에서 내려오면 신사 근처에 발달한 시가지인 몬젠마치(門前町)의 작은 토산품 가게 겸 식당에서 소바를 먹는다. 몸은 피곤하지만 다음날부터 시작될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낼 용기가 왠지 모르게 솟아오른다. 돌아오는 전철에서는 거의 잠을 잔다.

 

미타케산 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오다케산(大岳山, 해발1267미터), 노코기리야마(鋸山,1109미터), 고젠야마(御前山,1405미터), 그리고 하토노스(鳩ノ巣)역의 북쪽에 위치한 가와노리야마(川乗山,1363미터)나 호니타야마(本仁田山, 1225미터)에는 아직 오르지 못했다. 전부 도쿄도 안에 솟아있는 산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をちこち」제31호(Oct/Nov,09)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