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동권(한국민속학회 명예회장)

 

 

1991년 가을, 기시츠(鬼室)신사의 제례에 참관하게 되어, 그 일대에 전승해져 있는 백제에 관련된 유적과 문화에 접할 수 있었다. 그 때 17대 세습무(世襲巫) 촌을 방문하던 중 대장군신사를 발견하였고, 또 히노쵸라는 곳에는 대장군잇쵸메, 대장군니쵸메란 구역 이름이 있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6세기 후반 두 번에 걸쳐 백제인 유민들이 정착하였다고 하는데, 정착한 지역에 세워진 대장군신사와 대장군이라는 구역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한국의 천하대장군과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 솟아올랐다.

 

밤이 되어 와타무키(綿向)신사의 신주부부와 환담하던 중,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교토에 몇 개의 대장군신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교토에 직행하여 대장군팔신사, 가모대장군신사, 산죠대장군신사, 후카쿠사(深草)의 후지모리신사 경내에 있는 대장군신사를 답사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대장군신사의 유서기인데, “간무(恒武) 천황이 천도하여 황성의 동서남북 사방에 진호신(鎭護神)으로서 대장군을 맞아들였다” 란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대장군 연구논저를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논문도 두 세 개의 향토지에 현지조사 보고서가 있을 정도로, 학계에서는 소외당해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10년 처음으로 일본민속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씨가 음양도는 한국에서 전파되었고 쥬산즈카(十三塚)도 대장군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후에는 비와호 주변의 대장군신앙과 와카사 일대, 센슈 일대, 미야자키현의 대장군에 대한 보고서나 논문이 있다. 이처럼 지방 향토사학자에 의한 각지방의 대장군신앙 조사 보고는 있으나 전국적인 대장군신앙 연구서는 없고, 또 조사와 보고는 시가현을 중심으로 긴키지방과 와카사, 규슈의 미야지마현에 한정되었다.

 

나는 비교민속학의 관점에서 대장군신앙을 쫓기로 했다. 우선 대장군의 소재를 파악하여 신앙 양상을 연구함에 따라 한국의 천하대장군과 일본의 대장군과의 관련에 대해 연구하였다. 연구의 기초작업으로서 양국에서의 대장군 소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사보고서를 보고 611곳의 기록이 있어 분포표 작성이 가능했지만, 일본에서는 대장군의 소재 확인작업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외국사람으로서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현장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것은 긴 시간과 연구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모험을 시작했다. 그 이래 확신을 가지고 10년간 대장군을 쫓아 각지를 여행하며 현지조사를 한 결과, 1999년에「대장군 신앙의 연구」를 완성ㆍ출판하였고, 2년 후인 2001년에는 일본 第一書房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현지조사는 우선 각 현립도서관에 가서 향토사코너에 현내의 군쵸무라의 향토지와 신사지를 보았다. 3, 4일 간 작업을 하면 현내의 윤곽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져 분포표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직접 현지에 가서 확인하는 일이었다. 화려하게 신전을 차리고 많은 주민에게 신앙되고 있는 것을 보면 고생한 보람에 기뻤지만, 이미 소멸하여 숲이나 풀밭 속에 유적만 남아 겨우 주민에게서 옛이야기만을 듣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고, 몇 번이나 지명이 변경되고 행정구역의 개정 등으로 인해 확인이 불가능한 적도 있었다. 또 메이지시대 초기 신불통합에 의해 합병되거나, 신사의 말사로서 경내 구석에 식객으로 축소되어 있거나 하여 실망한 적도 많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조사를 진행시켰다.
7, 8년이 지나 겨우 784곳을 확인하여 분포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대장군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다. 조사만으로 이루어져 놓친 곳도 있을 수 있겠다. 앞으로의 추가적인 보완은 일본의 학자에게 기대해 본다.

 

한국의 천하대장군과 일본의 대장군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1. 대장군 분포수
한국의 천하대장군수는 611곳이 있는데, 백제의 땅이었던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473곳이 있어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그 중 가장 많은 곳은 전라남도로 201곳, 충청남도에 166곳이 있다.
일본의 대장군수는 784곳으로, 일본서기에 따르면 6세기 후반인 665년에 백제 유민 남녀 400여명이 정착하였고, 669년에도 백제인 남녀가 700여명 정착하는 등 두 번에 걸쳐 1100여명이 정착한 시가현을 중심으로 비와호주변에 가장 많은 313곳이 있어, 일본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많은 곳은 미야자키현으로 117곳이 있는데, 역시 도래문화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2. 대장군의 기능
대장군은 민속신앙으로서의 비중이 큰데, 때로는 실용적인 활용도 있어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기능

수귀

방제

신령

가축신

이정표

한국

O

O

 

 

O

일본

O

O

O

O

 

 

 

대장군은 방위를 지키고 악이나 병역을 차단하여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절실한 생각이 양국에서 같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정표로서도 활용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신령으로서 승화되었고(若狹지방), 가축의 번식을 가져오는 것으로 해석(규슈지방)되기도 한다.

 

3. 황성진호신(皇成鎭護神)
대장군신사의 유서기에 의하면 간무천황이 794년에 신궁을 짓고 진호신으로서 대장군을 맞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백제 지역에 천하대장군이 많은데, 일본에서도 역시 백제 유민이 집단으로 정착한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간무천황은 백제인 다카노노 니가사(高野新笠)를 어머니로 두어 어린시절을 백제인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따라서 천도 후 신궁의 수호신으로서 모계의 신을 진호신으로 받아들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