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조규철(한국외대 일본어과 부교수, 일본정치 전공)


19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이 자기희생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면,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은 테러집단으로 변한 아사마산장 사건 이후 철저히 분쇄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날의 동지들이 시민단체를 결성했고 지금은 민주화의 달콤함을 맛보고 있다면, 일본의 동지들은 회사인간을 거쳐 지금은 개호보험의 수혜자가 되어있다. 반면 한국의 시민단체가 명망가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점차 시민없는 시민운동에 열중하고 있다면, 일본에서는 주부와 고령자가 중심이 된 지역 주민활동이 착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10년만에 일본에 장기 체류할 기회를 얻었으니 일본 곳곳을 방문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듣고 배우기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 시민단체는 NGO와 NPO로 나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NGO는 국제협력활동을 하는 단체이고, NPO는 지역민들이 필요로 하는 봉사활동을 유상(有償)으로 하는 단체이다. 법률적으로는 NGO와 NPO 모두가 특정비영리활동법인(NPO)으로 등록된 단체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한일사회문화포럼>이라는 단체를 1999년부터 직접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지만, 일본의 시민단체를 방문하면서 감탄하는 것은 운영자들의 경영 마인드이다.
한국의 단체 운영자는 때때로 청교도적인 주의주장은 하지만 경영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부엌일과 살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식으로 단체운영의 실무에 무관심한 것을 오히려 당연시 한다. 찬물 마시고 헛기침하는 선비 정신이다. 반면, 2005년 12월 현재 일본에 등록된 전체 NPO 중에서45%는 다른 단체의 활동과 운영을 보조하거나 지원하기 위한 단체이다. 일본의 국제협력과 단체경영의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논리정연하고 생생하게 엮어낸 출판물을 한 권 소개하기로 한다. 2004년11월에 출판된 『연속강의 국제협력 NGO』라는 책이다.

 

이 책은 국제협력 NGO 활동의 현황과 역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실시된 메이지대학(明治大学) 경영학부의 특별강좌가 기본이 되어 출판되었다. 일선에서 활약하는 NGO 리더와 국제연합, 경제단체 관계자 총 13명이 공동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저자별 담당 강의명은 다음과 같다. 

 

 今田克司(CSO네트워크) : NGO의 오늘적 과제는 무엇인가
 伊藤道雄(국제협력 NGO센터) : 일본 국제협력 NGO의 역사와 네트워크
 黒田かをり(CSO네트워크) : 국제개발 NGO의 역할
 坂口和隆(시민에 의한 해외협력의 모임) : 개발도상국의 지역개발
 川千万喜(재팬플렛폼) : 시민사회로서 국제협력을 지지하는 구조
 石井宏明(피스윈즈 재팬) : NGO에 의한 긴급 인도지원 활동
 高橋清貴(일본국제볼런티어센터) : 평화구축과 NGO
 松本郁子(국제환경NGO FoE Japan): NGO와 주의주장
 佐久間智子(환경 지속사회 연구센터) : 사회운동의 글로벌화
 片山信彦(월드 비전 재팬) : NGO의 기반강화
 池上清子(국제연합 인구기금) : 국제연합기관과 NGO
 原田勝広(일본경제신문편집위원) : 미디어에서 바라본 NGO
 長沢恵美子(일본경제단체연합회) : 국제 NGO와 기업의 접점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원하면서도 별다른 대외정책 수단을 개발하지 못한 일본으로서 해외개발원조(ODA)는 가장 중요한 외교수단이다.  전후처리를 위한 배상과 경제성장을 위한 수출진흥을 목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국익우선적인 ODA는 점차 국내외의 비판과 반성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ODA의 이념과 원조방식이 동서냉전의 종결이라는 국제정치환경의 변화와 함께 크게 변했고, 그 후 정부와 NGO 사이의 대화, 연계, 공동사업이 제도적으로 활발해졌다. ODA과정에 대한 NGO의 참여를 확대시키기 위한 개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일본 일반회계 ODA예산의 추이

출처 http://www.mofa.go.jp/mofaj/gaiko/oda/index/shiryo/yosan.html

 

ODA는 인도주의와 국익추구라고 하는 두 가지 목표를 갖는다. 이 두 가지 목표 중에서 어느 쪽을 얼마나 우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본의 외무성과 NGO가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도 편협한 국익추구만을 내세울 수는 없고 2003년에 개정된「신ODA대강」이 분명히 표현하고 있듯이 ODA과정에 국민참가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일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원조」가 아니고「의리」이다. 신세를 진 대상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지만, 만난 적도 없는 저개발국 빈민을 조건 없이 수십년간 계속적으로 원조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막대한 ODA자금의 배분과정에 무국적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NGO단체의 참가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왜 원조를 해야만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철학에 대해 일본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만 하고, 대가도 없고 효과도 없을 지 모르는「의리없는 원조」방식에 대해 일본사회의 가치관이 동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