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撲(스모)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武藏丸, 貴乃花ㆍ若乃花형제, 出島 등 인기 있는 선수들이 즐비해 있다. 이번호에서는 스모를 테마로 일본인의 놀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스모의 역사
스모는 단순히 힘의 비교나 오락이 아니라, 원래 농업생산의 길흉을 점치고 신의 뜻을 기리는 제사로서 보급ㆍ발전해 왔다. 이것을「神事相撲(신지스모: 제사씨름)」라 한다. 그러나 나라시대(710-784)가 되면서 이 신지스모는 궁정의 중요한 의식으로 발전해 간다. 이때 천왕은 전국에 씨름선수를 차출하도록 칙령을 내려, 칠월칠석축제(7월7일)의 여흥으로서 천왕앞에서 경기를 치르게 했는데, 이것이 궁중의 중요의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여흥씨름은 헤이안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성행하게 되어 궁정의식의 相撲節會(스모세치에: 씨름연회)라는 독립된 기획물이 되어갔다. 헤이안시대 4백년동안 스모는 제사씨름에서 호화스럽고 현란한 씨름연회라는 국가적 행사로 발전했다.
가마쿠라시대(1185-1333)에서 무로마치시대(1391-1573)에 걸쳐, 그때까지 지배계급(귀족)이 유지해 왔던 의식중심의 스모는 행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무로마치시대 후기가 되면서 京都伏見(교토후시미)에 반직업적인 스모집단이 발생, 지방을 순회하면서 스모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후세의 勸鎭相撲(간진스모)의 원초적인 형태였다. 勸進(간진)이란, 원래 神社의 절 건립, 수리 등을 할 때 기부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간진스모는 당초 神社경내에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행해졌으나, 후에는 간진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영리를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이 간진스모는 에도시대 후기(18세기 중엽)에 직업스모로서 조직이 완비되었다. 1791년에는 에도성에서 德川家齊(도쿠가와 이에나리)장군의 上覽相撲(죠란즈모: 장군이 보는 스모를 말함)가 개최되기에 이르러 스모사상 전에 없던 번영을 누렸다. 이때는 1월부터 4월사이에 열리는 春場所(하루바쇼), 10월이나 11월에 열리는 冬場所(후유바쇼)로 일년에 두 번 대회가 열렸다. 또한 한 대회가 10일동안 열렸기 때문에 스모선수들을「1년에 20일만 일하고도 살 수 있는 부러운 남자」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스모는 메이지시대 이후 몇번인가 곡절이 있었으나 아직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2. 스모의 장소와 기간
현재 오오즈모는 일본스모협회가 운영하고 있고 1년에 6번 열린다. 스모를 실시하는 토지와 기간을 場所(바쇼)라 하고 한 장소에서 15일간 열리며, 현재 열리고 있는 스모의 장소와 기간은 다음과 같다.
一月場所 (初場所) 東京       三月場所 (春場所) 大阪
五月場所 (夏場所) 東京       七月場所 (名古屋場所) 名古屋
九月場所 (秋場所) 東京       十一月場所 (九州場所) 福岡

3. 스모의 番付(방즈케)
番付(방즈케)란 力士(리키시: 스모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주어지는 지위를 말한다. 우측을「東」, 좌측을「西」로 한다. 방즈케 최고의 자리가 橫綱(요코즈나)다. 이하 大關(오제키), 關脇(세키와케), 小結(코무스비), 前頭(마에가시라)로 이어진다. 여기까지를「幕內(마쿠우치)」라고 부른다. 마쿠우치 아래의 자리로는 十兩(쥬료), 幕下(마쿠시타), 三段目(산단메), 序二段(조니단), 序の口(조노구치)가 이어진다. 리키시는 조노구치에서 시작해 출세를 목표로 각고분투한다. 쥬료이상의 리키시는 한 대회에서 15회의 경기를 가지며, 8승 이상을 하면「勝ち越し(가치코시: 이긴 횟수가 진 횟수보다 많음)」가 되어 지위가 올라간다. 반대로 8패 이상을 하면,「負け越し(마케코시: 진 횟수가 이긴 횟수보다 많음)」로 지위가 내려간다. 마쿠시타 이하의 리키시는 한 대회 7회의 씨름경기를 치르며, 4승이 상승을 위한 중요한 승부처가 된다. 리키시는 우선 쥬료를 목표로 한다. 그 이유는 쥬료가 되면 급료가 지급되고,「關取(세키토리: 쥬료이상의 선수에 대한 경칭)」로서 씨름계에서 어엿한 리키시가 되기 때문이다. 마쿠시타이하의 리키시는 자신이 소속하는「部屋(헤야)」의 親方(오야카타: 씨름계의 우두머리)의 지도와 교육아래 훈련에 전념한다. 그들은 급료는 받지 않으며, 생활은 헤야에서 보살펴 주고있다. 그리고 마쿠우치, 쥬료 등 각급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린 리키시가 우승을 하게 된다.

4. 橫網(요코즈나)
원래 에도시대에는 요코즈나의 명칭은 없었고, 오제키가 최고의 지위였다. 오제키의 최강자를 요코즈나라고 부르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고, 초대 요코즈나는「明石志賀之助(아카시 시가노스케)」라는 리키시였다. 요코즈나는 일종의 명예직인데 수입도 이에 수반하여 큰 폭으로 늘어난다. 월급 및 수당 이외에도 승부에 거는 현상금, 후원회에서 나오는 축하금, 우승했을 때의 여러 축하금을 합하면 어느 정도의 연수입을 올리는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금액이 크다.
요코즈나는 천하의 요코즈나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위치만큼이나 엄한면도 있다. 요코즈나는 다른 리키시와 달라서 병이나 부상등으로 결장했을 경우, 일반 리키시라면 마케코시 취급을 받아 지위가 내려가지만, 요코즈나는 지위가 그대로이다. 그러나, 결장횟수가 많거나 요코즈나로서 불명예스러운 성적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아무리 젊더라도 물러나야 한다. 요코즈나의 명예와 권위에 손상이 가기 때문이다.


글 : 內田 成美 (일본국제교류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