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필자는 언제고 주저없이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꼽는다. 중학생 시절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사실 원죄라던가 권위 있는 존재의 용서 같은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으면서도 막연하게 그 책을 관통하고 있는 정신이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배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사실 가장 큰 이유는 도오루와 요오코의 이루어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빙점’은 그 배경이 된 도시들을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홋카이도 여행에 대한 꿈을 키워주었고, 많은 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빙점’에서는 아사히카와 뿐만 아니라 삿포로, 오타루, 노보리베츠, 아바시리 등 홋카이도의 여러 지역을 아우르고 있는데 거기서 필자가 가 본 몇 곳에 대해 소개해 보기로 한다.

 

1. 아사히카와 견본림과 미우라 아야코 기념문학관

미우라 아야코의 고향이기도 한 아사히카와는 홋카이도에서 삿포로에 이은 제2의 도시이지만, 관광지라기 보단 비지니스 도시라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삿포로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다. 보통은 비에이나 후라노로 가는 관문으로 아사히카와를 많이들 거쳐 가는데, 필자가 굳이 아사히카와를 찾았던 이유는 바로 ‘빙점’에서 도오루와 요오코의 집의 배경이 되는 외국수종견본림(外國樹種見本林 がいこくじゅしゅみほんりん) 때문이었다.
외국수종견본림은 국유림으로 외국의 수종이 일본의 한랭지에서 자랄 수 있는지 어떤지를 관찰해 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총 18헥타르의 면적에 52종 6000그루의 수종들이 있다고 한다.
특히,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빙점의 저자인 미우라 아야코의 기념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기념문학관은 아사히카와 시민들이 미우라 아야코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운동을 벌여 만들었다고 한다.
문학관에는 미우라 아야코의 친필로 쓰여진 빙점을 비롯하여 여러 번 리메이크 된 드라마, 영화 등의 빙점 자료들, 그 외의 미우라 아야코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런 작품들을 감상 하면서 조용히 쉬어 갈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길쭉길쭉 쭉 뻗은 여러 종의 소나무들, 그 옆을 유유히 흐르고 있는-아마도 요오코가 자살을 시도했을 곳인-비에이강, 요오코와 도오루가 뛰어 놀았을 ‘하늘과 맞닿은‘ 제방 등을 한가로이 걷고 있노라면 어느덧 내가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숲의 입구에 있는 ‘氷点を歩く (빙점을 걷다)’에 그려져 있는 지도를 따라 주인공들이 다녔을 길을 걸어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듯 하다.(필자는 체력의 문제로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2. 홋카이도 대학

소설의 주인공인 도오루와 요오코, 기다하라 등이 다녔던 홋카이도 대학은 ‘Boys, be ambitious'로 유명한 클라크 박사가 교장으로 있었던 삿포로 농학교에서 시작하여 1918년 지금의 홋카이도 대학으로 설립되었다. 농학교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다른 관광지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푸르고 아름다운 캠퍼스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본문 중에서 ‘요오코의 볼이나 하얀 블라우스에도 초록색이 비치는’으로 묘사된 울창한 포플러 나무길은 홋카이도 대학의 또 다른 명물로, 이 포플러 나무길을 보기 위해 홋카이도 대학을 찾는 이들도 많다.
주인공들이 다녔을 교양학부, 클라크 회관, 이학부 등 학교 순례를 마치고 나면 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도 한 번 드셔보시길...시간이 남는다면, 도청 근처에 있는 홋카이도 대학 부속식물원까지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3. 시코츠 호(支笏湖)

요오코, 도오루, 기다하라, 준코들이 놀러갔던 시코츠 호는 홋카이도 치토세에 있는 칼데라호로, 시코츠도야 국립공원(支笏湖同爺國立公園) 안에 속해 있다. 평균 수심 265m, 최대 수심 363m로 타자와 호(田澤湖)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면적으로는 일본에서 8번째, 칼데라호로는 쿠샤로호(屈斜路湖)에 이어 두 번째이기도 하다. 특히 1년 내내 수온이 일정하며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본문 중에 ‘투명도가 25미터’라고 나오는데 그에 걸맞게 물이 무척 맑았다.
북쪽으로는 恵庭岳(えにわだけ), 남쪽으로는 風不死岳(ふっぷしだけ), 樽前山(たるまえさん)으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아름다운 호수를 천천히 산책하며 구경하다 지치면 유람선을 타거나 시코츠호 비지터센터(支笏湖ビジタ-センタ-)에서 피로를 풀면서 방명록에 글을 남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직도 ‘빙점’에 나온 곳을 다 가보지는 못했으나,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소운쿄에서는 아이누의 축제를, 아바시리에서는 불타는 유빙을 꼭 보고 싶다.

 

+ URL
미우라 아야코 기념문학관 http://www.eolas.co.jp/hokkaido/hyouten/
시코츠호 비지터 센터 http://www15.ocn.ne.jp/~sikotuvc/
시코츠호 http://ja.wikipedia.org/wiki/%E6%94%AF%E7%AC%8F%E6%B9%96
 


View Larger Map

<글:문화정보실 사서 신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