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기념 영화제(7/1~8/29)>에 즈음하여, 세계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구로사와 영화의 매력과 영화 관람 포인트를 [7인의 사무라이],[라쇼몽],[가게무샤]등의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한 배우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세계를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전에 그의 영화에서 고락을 같이하며 구로사와의 분신으로 등장했던 주요 배우들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 가야할 것 같다.

 

존 포드가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로 헨리 폰다와 존 웨인이라는 배우를 영화에 항상 내세웠듯이, 구로사와는 시무라 다카시(志村 喬, 1905-1982)와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郞, 1920-1997)를 그의 주요 작품에서 페르소나(주인공)로 삼았다.물론 구로사와 데뷔작의 주인공을 하고 초기 작품들을 함께 한 후지타 스스무(藤田 晋, 1912-1991)와 <요짐보>와 <스바키 산주로>에서 미후네 도시로의 상대역을 하고, <카게무샤>와 <란>등 구로사와 노년기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나카다이 다쓰야(仲代達矢, 1932~)도 빼놓을 순 없다.

나카다이 다쓰야

후지타 스스무는 <스가타 산시로>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후 1946년 <우리 청춘 후회 없다>까지 구로사와 초기 작품에서 강인한 남자로서 주요 역할을 하다가, 구로사와의 본격적인 걸작으로 평가되는 <주정뱅이 천사>(1948)에서 미후네 도시로의 등장으로 그의 역할은 미미해졌다. 그러기에 구로사와의 영화세계에서 실질적인 페르소나는 미후네 도시로, 시무라 다카시, 나카다이 다쓰야 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구로사와는 영화에서 캐릭터를 매우 중시하는데, 그의 주요한 영화는 대부분 미후네 도시로와 시무라 다카시, 또는 미후네 도시로와 나카다이 다쓰야라는 두 상반된 캐릭터의 대립 과정을 통해 휴머니즘과 인간 본성 탐구에 관한 주제를 드러낸다.

 

<주정뱅이 천사>와 <7인의 사무라이>는 미후네 도시로와 시무라 다카시의 캐릭터 대립을 보여준 대표적인 경우다. 두 배우는 외모부터가 대조적인데, 미후네는 윤곽이 뚜렷하고 강해 보이는 반면, 시무라는 평범하고 소시민 적이다. <7인의 사무라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미후네는 주로 귀족적이고, 강하고, 열정적인 역할을 맡고, 시무라는 소시민적이고, 내성적이고, 나약한 감성을 지닌 역할을 주로 맡는다. 두 배우는 1950년대 이후 구로사와 절정기 영화 이력에서 구로사와 자신의 양면적인 캐릭터를 둘로 나눠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특히 구로사와 보다 5살 많은 시무라 다카시는 본격적인 연기 데뷔작인 <스카타 산시로>부터 작고하기 2년 전 <카게무샤>까지 자신의 배우로서의 인생을 거의 구로사와의 분신처럼 함께 한 배우다. 그의 최고 연기는 시한부 인생인 소시민을 연기한 <이키루>에서 볼 수 있다.


시무라 다카시가 연로해지자 1960년 <요짐보>와 <스바키 산주로>에서는 미후네 도시로 상대역으로 날카로운 눈매와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나카다이 다쓰야가 구로사와의 또 다른 분신 역할로 새롭게 등장한다.

 

나카다이 다쓰야라는 배우는 원래 일본의 또 다른 거장 고바야시 마사키(1916-1996)의 페르소나로 더 유명하다. 그는 고바야시 감독의 데뷔작부터 <인간의 조건>시리즈(1959-1961)와 <세푸쿠(할복)>(1962), <괴담>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구로사와 영화에서는 흔쾌히 조연급으로 출연하곤 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1980년 구로사와의 시대영화 <카게무샤>에서 1인 2역으로 다케다 신겐과 도둑의 역할을 연기하고,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각색한 <란>에서는 일본판 비운의 리어왕인 ‘히데토라’성주 역할을 해낸다.

 

구로사와의 페르소나들 4명 중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배우는 상대적으로 가장 젊은 나카다이 다쓰야 뿐이다. 그는 1932년생이니 우리나이로 올해 79세다. 다행히 그가 이번 구로사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구로사와의 스크립터이자 프로덕션 매니저였던 노가미 데루요와 함께 우리 한국에 방문해 우리 관객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를 직접 만나 구로사와 이야기를 듣고 대화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이정국(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