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기념 영화제(7/1~8/29)>에 즈음하여, 세계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구로사와 영화의 매력과 영화 관람 포인트를 [7인의 사무라이],[라쇼몽],[가게무샤]등의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4) 절정기의 영화들 <라쇼몽>, <이키루>, <7인의 사무라이>

 

세계적인 감독으로서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한 평가는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라쇼몽>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이키루>(1952), <7인의 사무라이>(1954)에서 절정에 달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거장인 오즈 야스히로의 <도쿄 이야기>(東京物語, 1953)와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雨月物語, 1953)와 같은 걸작들이 나왔으니 그야말로 1950년대 초반은 일본영화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50년에서 1955년까지 구로사와는 <라쇼몽>부터 <생존의 기록>까지 5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중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각색한 <백치>(1951)와 일본인들의 원폭에 대한 피해의식을 다룬 <생존의 기록>(1955)은 상대적으로 평가를 못 받은 범작에 불과하지만, <라쇼몽>과 <이키루>, 그리고 <7인의 사무라이>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췄을 뿐 아니라 동양적인 미학과 서구적인 미학이 절묘하게 결합 되어서 더 이상 올라설 수 없는 영상미학의 최고 경지까지 갔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
 

RASHOMON@1950 Kadokawa Pictures,Inc.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두 편의 단편 [라쇼몽](1915)과 [덤불 속](1921)을 토대로 쓴 시나리오를 영화화 한 것이다. 일본 중세를 배경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를 풍자한 단편 [라쇼몽]은 시나리오의 기본 배경과 주제가 되고 있고, 숲속에서 일어난 한 사무라이에 대한 살인과 그 아내의 강간사건을 놓고 네 명의 관련자가 각자 다르게 증언한 이야기를 다룬 단편 [덤불 속]은 시나리오의 주요 구성과 캐릭터 및 주제를 이루고 있다. 구로사와는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시각으로 그린 아쿠다가와의 원작의 분위기를 라스트 씬에  나뭇꾼이 버려진 아이를 키우려고 하는 에피소드를 추가 시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제시한다.  아쿠다가와의 ‘진실의 상대성’이라는 큰 주제는 유지하면서도 결국에는 구로사와 자신의 일관된 메시지인 ‘휴머니즘’으로 보완한 것이다. 이 영화는 거창하면서도 보편적인 주제의 강렬함 못지않게 형식 미학적인 면에서도 돋보인다. 법정의 정적인 분위기와 숲속 회상장면의 동적인 이미지의 대비, 그리고 산적의 사무라이 부인 겁탈 장면과 사무라이와 산적이 결투하는 장면에서의 편집과 구도 감각은 매우 세련되고 영화적이다. 촬영, 편집, 조명, 사운드 등 모든 형식 요소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잘 어울려져 있는 것이다.

 

<이키루>는 시청에 근무하는 중년의 과장이 어느 날 시한부 암 선고를 받고나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언뜻 보면 신파조 내용 같지만 영화는 인간의 실존적인 차원까지 접근하면서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새롭게 자각한 뒤 세상에 의미를 남기며 떠나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라쇼몽>처럼 내용뿐 아니라 복합적인 구성과 미학적인 시각묘사가 뛰어나다. 특히 암에 걸려 남은 삶을 어떻게 할지 몰라 절망적으로 해답을 구하고자 애쓰는 주인공 와타나베(시무라 다카시)의 캐릭터는 매우 실감나게 잘 그려져 있다.

 

<7인의 사무라이>는 200분이 넘는 대작으로 미국 평론가 폴링 카엘은 그리피스의 <국가의 창생>(1915)이래 최대의 전쟁 서사시라고 극찬하였다. 세계영화사상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7명의 사무라이가 농부들에게 고용되어 무도한 산적들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전쟁 액션영화인 듯 보이지만, 막상 영화 속의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탁월해 영국의 한 감독은 이 작품을 보고 ‘구로사와는 심리에 대한 정확한 관찰자이자 행동에 대한 예리한 분석자다’라고 평했다. <라쇼몽>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액션과 구로사와 특유의 유머감각까지 곁들어져 <7인의 사무라이>는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한다. 이야기의 역동성과 친숙한 스토리 구조로 인해 할리우드에서도 <황야의 7인>(1960)란 작품으로 리메이크되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정국(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