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의 진솔한 일본체류이야기와 일본연구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본 체재기

  

 

박철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부교수

 

 

2009 7 1 JF 펠로십을 받아 동경에 도착했다.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정치를 전공하는 나로서는 기대되는 반년이었다. 왜냐하면, 일본 중의원 임기만료가 9월로 다가오고 있어서 선거 실시가 거의 확실했고, 무엇보다도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순간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식년을 맞을 채비를 하면서 미국에서 조용한 연구생활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일본정치 현장의 짜릿한 맛을 다시 볼 것인가 하는 선택에 접했을 때, 나는 역시 후자를 택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최선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JF 펠로십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반년에 걸친 민주당에 대한 현지조사는 JF의 지원에 의해 가능했다.

 

동경에 도착해서 먼저 중의원의원 회관을 찾았다. 적진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자민당 중진 의원을 만나자, ‘아소 총리는 국회 회기 마지막에 국회를 해산함으로써 사실상 임기만료보다 더 늦은 선거를 가질 것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실제로 아소 총리는 7월말이 되어서야 국회를 해산하고 선거정국에 들어감으로써 내가 일본에 온 현지조사의 의미를 배가시켜 주었다. 국회 해산 이전에 만난 민주당의원들은 대부분 선거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구나무를 서도 이번엔 정권을 손에 넣을 것이라는 의원도 있었다. 정책 만들기에 골몰하는 의원들은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는 의원들에게 듣는 정보는 기자들로부터 또는 신문에서 읽는 자료들보다도 생생하고, 값지고, 버릴 구석이 없다. 15분에서 30분 정도의 짤막한 시간에 이루어지는 만남은 대개 압축되고 정제된 대화로 이끌어지게 되고, 속내를 숨길 만큼의 준비된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시 일본에 오길 잘 했구나 하고 생각이 드는 때는 연구 대상인 일본 정치의 소리를 생생하게 듣고 난 후일 때가 많았다.

 

선거에 돌입한 이후에는 각 선거구들을 시간이 나는 대로 돌아보았다. 해산 당일에는 오타 공명당 대표가 출마한 선거구에 들러 보았다. 오자와가 공천한 신인 여성후보와 맞서는 그의 태도가 예전과 달랐다. 조직을 동원한 선거가 바람의 선거에 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선거구를 보면서 다시 실감했다. 마치 일본 정치가 한국 정치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잘 알던 자민당 한 중진 후보 선거구로 발을 옮겼다. 한국에서 온 문화인들을 소재로 한 행사를 통해 지역구 활동에 힘을 싣고자 했다. 한국 관련 문화행사가 일본의 지역구에서 사람들을 끌 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근처의 100년이 넘은 온천에서 여독을 식히고 동경에 돌아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경 근처에서 출마한 민주당 선거구엔 활기가 넘쳐 흘렀다. 만면에 미소를 띤 후보들의 얼굴이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민주당 압승으로 선거가 끝난 것은 예상한 범위안의 일이었다.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53년이 넘게 집권을 한 자민당을 무너뜨리고 민주당이 전후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하는 순간에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내심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일본도 정권교체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는 비교정치적 의미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일본이 선거정치에 있어서 보통국가화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첫 등원을 하던 날 나는 국회의원회관에서 당선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통로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한테까지 인사를 하며 신나 하던 민주당 초선의원의 얼굴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중진 의원들은 내각의 부름을 받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는 모습이었다. 휴대폰 충전이 잘 되어있는지 확인하던 민주당 중진의원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정권이 출발하면서 다가온 정권운영의 부담은 나날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동경을 떠나기 이전에도 알 수 있었다.

 

동경 체재 6개월이 되던 달에 조선일보 특파원이 나와 함께 민주당 젊은 권력층에 대한 인터뷰를 함께 하자고 해서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이 입각하거나 당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한 상태라서 내가 만남을 주선하고 인터뷰를 리드하고 그 기록을 조선일보에 활자화하는 작업이었다. 내각의 각 성청에서 부대신, 정무관을 차지한 의원들, 당에서 부간사장 및 국회 위원장을 맡은 의원들과의 대화는 지금도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남아 있다.

 

내가 인터뷰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그 후에도 민주당정권의 전면에서 당과 내각을 이끌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민주당 정권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의 386에 해당하는 이들 의원들이 정치의 전면에 서게 된다면 일본정치는 요동치듯 활기차게 변할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