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의 진솔한 일본체류이야기와 일본연구이야기를 담았습니다.

 

 

 

                                                                                   

BMW(Bus, Metro, Walking)

 

 

전진호

광운대학 국제협력학부 교수 

 

JF의 지원으로 2008년 도쿄에 있는 방위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오다이바(お台場)의 기숙사에서 에비스(寿)에 있는 연구소를 왕복하는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이었지만, 20081년은 나에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1년이었다.

먼저 정신적 안식의 1년이었다. 2003년부터 대학에 근무하면서 연구와 교육 이외에도, 대학의 학사, 행정업무 등 수 많은 회의, 업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보낸 1년 동안 거의 모든 학교의 학사, 행정업무에서 벗어났다. 대학의 업무 외에도 학회활동, 경조사 참석 등 한국에서의 복잡한 인간관계,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도쿄에서 1년간 정신적으로 안식할 수 있었다.

1년간 연구 활동을 했던 방위연구소에서의 학문적 경험도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방위연구소는 100명 가까운 연구자가 포진하고 있는 일본의 국방, 안전보장정책 관련 최대의 연구소이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비교연구’를 연구 테마로 하고 있던 나에게 방위연구소는 말 그대로 연구자의 집합소였다. 미일관계, 한일관계는 물론 한반도문제, 안전보장정책, 일본의 방위정책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교류하면서 연구의 폭을 넓히고 동시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신선한 학문적 자극의 1년이었다.

하지만 20081년의 일본체류 기간 중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정신적 안식도, 학문적 자극도 아니었다. 오늘은 좀 색다른 이야기, ‘일본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도쿄에서의 삶은 서울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먼저 자가용이 없으니 언제나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서울에서는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자가용을 이용했지만, 도쿄에서는 1365일 버스(Bus), 지하철(Metro), 걷기(Walking)의 조합이었다. 오다이바의 기숙사에서 에비스의 연구소에 가기 위해서는 기숙사에서 도보 15분정도 떨어진 전철역으로 가서 20분 전철을 이용한 다음, 다시 연구소까지 10분정도 걷는다. 매일 그렇게 긴 거리를 걷는 것도 그다지 힘든 것도 없었지만, 일본생활 2개월에 약 3kg이 빠졌다. 당연히 건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어딘가 몸이 안 좋은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특별히 운동도 하지 않았는데 3kg이 빠졌으니 말이다. 일본체제 1년 동안 서울에서보다 3-4kg 감량된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식생활도 서울의 그것과는 달랐다. 삼겹살에 소주, 과식과 기름진 음식대신, 적당한 양의 식사, 야채, 생선 위주의 식단, 1주일에 2회 정도 있던 술자리도 월 2-3회 정도로 줄었다. 술을 마셔도 소주 1-2병을 마시던 서울에서와는 달리 간단히 맥주로 하거나, 취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술자리를 즐기는 검소한(?) 생활로 바뀌었다. 과음으로 다음 날 아침이 힘든 일은 1년간 몇 차례 있지 않았다. 서울에서 힘들게 알코올을 분해하던 내 간도 일본생활을 충분히 즐겼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수많은 회의와 약속, 모임 등으로 몸과 마음이 언제나 지쳐있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1년은 단조로운 나만의 시간이었고, 시간을 내어 특별히 운동하는 일 이외에 매일, 매주 나를 구속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참석해야만 하는 경조사도, 나가야만 하는 모임도 거의 없었다. 점심 먹고 산책하고 저녁 먹고 운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물론 외국에서의 연구년 생활은 국내에서의 생활과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여유와 휴식이 보장된 생활이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매우 건강에 나쁜 생활을 강요받고 있음을 자연히 알 수 있다. 기름진 식사와 과식, 과음, 피로와 운동부족, 지나친 자가용 이용 등 스스로 몸과 정신을 해하는 생활이 한국에서의 삶이 아닌지?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몸을 망치는 생활습관에 익숙해진 삶이 아니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의 연구년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자 생활도 다시 과거의 바쁜 생활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지혜를 이미 체득했기 때문에 1년 전의 생활로 그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특히 BMW(Bus, Metro, Walking)의 실천은 1년의 일본체제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