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의 진솔한 일본체류이야기와 일본연구이야기를 담았습니다.

 

JF와 함께 한 사람들 (17)

 

정준표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본연구 펠로십을 받게 될 줄이야!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론 일본어는 진짜 초보수준이라 일본에 가서 어떻게 생활할지 걱정이 앞섰다. 동네 문화센터의 일본어 회화강좌에 등록을 하고 집에서도 나름대로 일본어 공부를 했지만, 200981일 토요일 일본으로 막상 떠날 때는 “일본에서는 일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아예 영어를 사용하면 된다.”는 몇몇 주변사람들의 말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어느 정도의 모험은 감수하는 성격이라,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일단 가져간 두 개의 큰 짐을 공항에서 택배로 미리 얻어 놓은 방위성 바로 앞에 있는 요츠야의 아파트로 보내고, 전철을 타고 고탄다에 위치한 부동산중개업소 사무실에 들러 월세를 지불하고 열쇠를 받아 다시 전철을 타고 요츠야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하여 070 전화를 설치하고 한국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고 전화하고 나니 비로소 “이제 이 방에서 혼자 6개월을 보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주변과 내가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호세이대학과 그 근처를 산책하면서 일요일과 월요일 오전을 보내고 난 후, 월요일에는 가까이에 있는 일본국제교류기금 빌딩을 찾아가 히로타 유지(廣田由治)씨 등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신주쿠 구청을 찾아가 외국인등록을 했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택배를 부칠 때나 부동산 사무실과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는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외국인등록에서는 정해진 표준절차를 따르면 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내 일본어 실력과 관련한 문제는 그 다음날 은행계좌를 개설하려 할 때 터졌다. 1년 이상 체류하지 않는 외국인에게는 은행계좌를 열어줄 수 없다는 창구직원의 말을 내가 겨우 알아듣기까지는 30분 이상이 걸렸던 것이다. 다음날 수소문하여 찾아간 신주쿠 도심의 은행(新生銀行)에서 겨우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지만, 일본어 문제는 일본에서 머문 6개월 동안 내내 내게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일본어 말문이 터지게 된 것은 일본에서 생활한지 거의 한 달쯤 되어서였다. 일본어교실에서 만난 빌리(Billy L. Ichida, Jr.)와 함께 가부키쵸의 한 클럽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전철을 탄 것이 그만 잠이 들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내리게 되었다. 빌리는 일본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친구였지만, 일본생활에서 내 후견인 노릇을 기꺼이 해 주신 당시 호세이대학에 재직하시던 김영작선생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내가 많이 어울린 술동무였다. 돌아갈 전철은 이미 끊겼고 주머니에 돈도 거의 없어 역 앞 벤치에 앉아 어떻게 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편의점을 들렀다가 그 늦은 시간에도 돈을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술김에 기사아저씨와 대화를 해 보니 신기하게도 일본어가 술술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위에서의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한 일본어 레슨에 12천 엔을 지불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말문은 터졌지만 일본어 문제는 여전히 내게는 큰 고민거리였다. 지도교수인 호세이대학의 스즈키(鈴木佑司)선생님의 대학원 수업을 학생들에게 인사하러 갔다가 그냥 듣게 된 것이 문제였다. 수업은 영어교재를 가지고 두 서너 문장씩 십여 명의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일본어로 번역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어느 부분을 내가 맡게 될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갈지를 예상하여 그 전부를 한국어로 먼저 번역하고 이를 컴퓨터의 번역기를 사용하여 일본어로 바꾸고 문제가 있는 곳을 나름대로 손보는 방식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매주 한 번의 이 수업은 내 혈압이 올라가는데 단단히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 유권자의 투표참여를 비교분석하는 것이 내 연구주제였는데,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역사적인 제45회 중의원선거를 일본 현지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내 연구를 위해서도 큰 행운이었다. 짧은 일본어 때문에 직접 유권자와 인터뷰를 하지는 못했으나, 거리에 붙은 벽보를 유심히 살피고 선거유세를 관람하면서 나름대로 일본 선거에 대한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일본 선거관련 자료를 많이 수집하여 가져온 것은 물론이다. 
 

 

 

 

 돌이켜봐도 일본에서의 6개월은 일본어 때문에 고생하긴 했어도 정말 보람이 있었고 매우 즐거웠다. 6개월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고혈압 외의 다른 후유증은 아직도 선발될 당시에 제출한 연구계획에 따른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서 오는 일본국제교류기금에 대한 부담감이다. 이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하여 관련 연구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 중의원선거가 한 번 더 실시되면 그 만큼 분석해야 할 자료가 많아지게 되니, 다음 중의원선거 이전에 꼭 연구를 일단락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