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와 함께 한 사람들 (20)

 

교토의 골목길을 걷는다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정인하

 

 

 

 

 2년 만에 다시 찾은 교토의 여름은 여전히 활기찼고, 무더웠다. 마침 도착한 날이 기온 마츠리(祇園祭)가 최고조에 달하는 야마보코 순행(山鉾巡行)이 있는 날이어서, 기차역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가방을 숙소에 풀자마자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문을 나섰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막연함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여행의 재미보다는 학문적인 필요에 따라 움직이지만, 오늘만은 그냥 축제 행렬이 지나가고 있는 가와라마치(河原町通)거리 쪽으로 향했다.

 필자의 전공분야는 건축 및 도시사이다. 도시자체가 연구 대상이다 보니, 다른 연구자들처럼 연구실에 머물기보다는 많은 시간을 도시의 건물들 사이를 배회하며 보냈다. 2010년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지원으로 도쿄대학에서 두 달 간 연구할 때에도, 연구실에 머물기보다는 일본의 곳곳을 여행하며 건축과 도시를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은 일본건축과 도시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2010년의 일본 체류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놓았지만, 두 달 동안의 경험만으로는 여전히 피상적이고 미흡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일본 건축의 깊이와 폭을 생각하면 다소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고, 그래서 새로운 계기가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올해 여름 일본을 다시 찾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이번에는 본거지를 도쿄가 아닌 교토로 잡았다. 보다 심층으로 다가서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교토는 오랜 세월 일본의 수도였기 때문에 워낙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수많은 절, 신사, 궁궐, 정원, 마치야(町屋) , 여기에다 근현대 건축물까지 더해져서 짧은 시간에 다 돌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교토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개의 관광지만을 들러보고 서둘러 떠난다. 그것은 대단히 파편적인 체험이다. 그렇지만 도시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서 도시의 들을 걸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올 여름 교토의 골목길을 구석구석 걸어 다녔다. 교토의 골목길은 매력적이다. 오랜 전통이 현대적인 삶과 중첩되어 있어 더욱 그렇다. 지속적인 보존 정책 덕분에 오래된 건축물의 무차별한 파괴를 막을 수 있었다. 곳곳에 박혀 있는 마치야들은 그런 시간의 겹을 드러내고 있다. 이웃을 배려하는 일본인들 특유의 의식 때문에 길들은 좁고 복잡하지만 비교적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도시의 길들은 여러 크기를 가지지만, 교토의 골목길들은 대체적으로 인간적인 스케일을 가진다. 특히 목조 건물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서 돌로 된 유럽의 골목길들보다는 훨씬 가볍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다 지각의 일관성을 부여하는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목재 판벽, 대나무 목책, 격자창, 곤충 모양의 창(虫籠窓), 그리고 얕은 처마 등.

 

 

 교토를 걸으며 인상적이었던 골목길을 꼽아보면, 우선 기온(祇園)시조역에서 출발하여 야사카(八坂)신사를 거쳐 기요미즈테라(淸水寺)까지 이르는 거리를 들 수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교토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 거리의 상점들은 물건과 음식을 팔고 있지만 전혀 천박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정제된 방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천천히 걸으면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 길은 단순하지 않다. , 히가시야마(東山)지역이 산비탈 지역이어서 지형적으로 상당한 굴곡을 가진다. 또 기온각, 호칸지(法觀寺)오층탑, 로쿠하라미츠지(六波羅蜜寺)와 같은 유적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특히 압권은 키요미즈테라로 올라가는 길에 등장하는 계단 길들이다. 계단과 건물 그리고 경사지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연출한다.

 

 

 

 

 두 번째로 추천할만한 골목길이 산조에서 시조 사이에 있는 기야마치(木屋町通)거리이다. 이 길의 특징은 길 가운데로 흐르는 얕은 시내와, 그 주변으로 촘촘하게 늘어선 벚꽃과 버들나무다. 도심 속에 위치하여 다소 번잡하지만 2년 전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의 건물을 보기 위해 우연히 들른 이곳에서 특별한 인상을 받았다. 도심 속에 숨겨진 속살이랄까? 특히 밤에 이곳을 방문하면 미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작은 다리 위에서 흐르는 개천을 바라보노라면 애잔함과 무상함이 몰려온다. 그것은 왜일까? 이곳은 도쿄의 신주쿠나 오사카의 도톤보리에 비해 그 규모나 화려함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가츠라리큐桂離宮와 같은) 교토의 다른 유적들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되는데, 그것은 일본의 독특한 역사와 연관된 듯하다. 에도 막부가 시작된 이후 모든 정치적 실권은 도쿄에 있었다. 상징적인 수도로서 교토는 권력에 대한 욕구를 문화적으로 승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도의 미의식을 성취하지만 그것만으로 권력의 공허함을 채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 길인데 슈가쿠인 리큐(院離宮)에서 시작하여 만슈인(曼殊院)까지의 길이다. 교토 중심지에 다소 벗어난 교외에 위치한 이 길은 평화롭게 사색하기에 좋다. 보통 긴가쿠지(閣寺)에서 시작되는 ‘철학의 길’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길이 더 좋다. 참고로 슈가쿠인 리큐는 일본 왕실의 이궁으로,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53 헥타르에 이르는 넓은 대지 속에 세 개의 정원들로 구성된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자연을 다루면서 이끌어낸 고도의 미적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