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대지진 이후, 재난지역과 다문화공생

 

양 기 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짧은 2개월이었지만 모처럼 연구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필자는 2012년 연구년 동안 유럽, 필리핀 등을 돌아다니면서 자료수집과 원고집필에 전념하고 있었다. 일본유학을 마친지 벌써 18. 일본에 세미나나 자료수집을 위해 단기 방문한 적은 많았지만, 수 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집중적으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마침 일본국제교류기금의 단기펠로십프로그램 지원을 받아서 20122개월간(7-8) 도호쿠(東北)대학 법학부 방문연구원으로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도호쿠대학에 갔던 이유는 3.11 동일본대지진이후 도호쿠지방의 피해현장과 재난복구를 살펴보고, 결혼이민자와 다문화자녀, 유학생이 많은 도호쿠지방의 다문화 현장을 둘러보고자 한 것이었다. 인파로 붐비고 물가비싼 도쿄생활에만 익숙해있던 필자는 조용하고 숲으로 둘러싸인, 연구환경이 잘 구비된 지방 국립대학에서 지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 도호쿠여행

필자가 체류했던 센다이시(仙台市) 산죠() 유학생기숙사는 싱글룸 안에 침대, 책상이 놓여있어 그야말로 1988년 첫 유학시절로 완전히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이 모여 있고, 학교까지 셔틀버스로 오가는, 그런 풍경 속에서 필자는 그저 나이든(?) 유학생이었다. 다행히 도호쿠대학에서 개인 연구실과 컴퓨터, 집기 등을 제공해 주어 좋은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매일처럼 기숙사와 연구실, 도서관을 오가면서 그저 밥 먹고 공부하는, 유학시절의 단순한 일상으로 복귀한 셈이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7월말까지 학기중이라 다양한 학회와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재난지역의 사회학, 복구와 부흥비젼 토론회 등을 비롯하여, 도호쿠대지진의 기록, 일본다문화 자료도 풍부하여 큰 도움이 되었다. 이시노마키(), 미나미산리쿠(南三陸), 후쿠시마현(福島県), 이와테현(岩手県) 등 피해지역에서의 현장견학, 한국출신 결혼이민자와 재난경험 인터뷰, 3.11당시 외국인 유학생들의 대피과정과 문제점 등 재난과 다문화 등에 대한 많은 경험과 자료를 찾아가는 일정은 흥미로움의 연속이었다. 발표와 토론 등의 기회가 많아서 각종 원고와 논문, 신문기고문 등을 집필하다보니 훌쩍 2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연구실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작업은 외롭지만 즐거운 나날이었다.

204만명의 외국인주민이 거주하는 일본은 지역별로 다문화현상이 약간씩 다르다. 도쿄나 오사카는 올드커머(old comer)인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이 살고, 나고야(名古屋)나 하마마쓰(浜松)에는 뉴커머(new comer)인 일본계 브라질인이나 기능실습생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도호쿠지방은 결혼이민자와 유학생이 많은 편이다. 일본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홋카이도(北海道)1위라면, 그 다음으로 넓은 이와테현과 후쿠시마현이 각각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호쿠지방은 상대적으로 면적이 넓고 인구가 분산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필리핀, 한국에서 이주해온 결혼이민자들 또한 집중거주보다는 농어촌지역에 산재(散在)해 있는 편이다. 도호쿠대학에는 해외유학생이 많아 중국인 유학생 817, 한국인 유학생 137명 등, 1,500명에 달한다.

▲ 센다이축제
유학생대책이 잘 짜여진 일본도 결혼이민자에 대한 다문화정책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철저히 결혼이민자와 다문화자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일본은 이민정책을 표방하지 않고 있으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높은 정도이다. 한국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라는 전국적인 다문화정책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국제교류협회를 제외하면 농촌지역에까지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농어촌지역이 많은 도호쿠지방에서 결혼이민자에 대한 일본어교육, 생활상담과 자녀 멘토링 등이 한국에 비하여 부족한 편이다.

다행히도 3.11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정부가 적극적인 외국인지원 대책을 실시한데다, 지방정부와 시민단체, 국제교류협회간 거버넌스가 잘 작동되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다양한 언어로 재난정보를 제공하고, 각 지역을 돌면서 결혼이민자와 외국인유학생의 재난대피안내, 생활상담, 귀국지원에 이르기까지 자원봉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대적으로 외국인 피해는 적었다고 한다. 외국인주민이 일본인 커뮤니티 속에서 피해자를 돕는 경우도 있었다. 내국인과 외국인주민이 서로 돕고 사는 다문화공생사회로서 일본사회의 장점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의 하향식, 배분식 다문화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일본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다문화사회만들기는 부러운 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본지자체별로 다문화시책의 격차가 매우 큰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공통된 제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2개월동안의 연구기간중 재정지원과 연구공간을 제공해 준 일본국제교류기금과 도호쿠대학 법학부, 도자와 히데노리(戸澤英典) 교수를 비롯한 많은 분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