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일본 거장전(3K영화제:7/1~8/10)>에 즈음하여, 일본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고바야시 마사키, 기노시타 게이스케, 기무라 다케오 3인의 감독이 제작한 영화의 매력과 영화 관람 포인트를 3인의 대표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정국(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영화감독)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 사무라이 정신에 대한 비판

 

                          

지난 영화제에서 가장 문제작을 택하라면 주저 없이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을 꼽을 것이다. 필자가 대학시절 영화 공부하던 때만 해도,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切腹, 1962년작)에 대해서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사무라이 영화의 걸작, 칸느에서 상을 받은 영화라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러다 뒤늦게 이 작품을 보고 나서는, 구로사와의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해 보이지만, 고바야시 감독이 지닌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출력은 그에 못지않다는 걸 알고 놀랐다. <할복>은 당시 칸느 수상으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한때 일본 영화비평가협회 투표에서 역대 최우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을 만큼 자국 내에서도 높이 평가 받았다.

<할복>은 기본적으로 사무라이 영화에 속하지만, 스토리 전개 스타일로 보면 미스테리 액션 스릴러, 주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사회비판 영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현재와 과거를 적절히 엮어가는 복합 구성 방식이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복합구성이 스토리의 흐름을 끊고 다소 지루해질 수가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그런 구성이 오히려 극적 긴장감을 끌어 올리며 주제를 강화시켜 나가는 힘이 있다.

그동안 ‘할복’은, 2차 대전 당시에는 ‘가미가제(神風)’란 방식으로 변형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했을 정도로, 일본적인 사무라이의 정신을 미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고바야시는 <할복>의 주인공인 츠쿠모 한시로(나카다이 다쓰야야 분)의 입을 통해 ‘사무라이의 명예는 겉치레일 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할복’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정면으로 비판한다. 또한 ‘할복’은 영주들이나 권력자들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 그리고 부하들을 다루기 위한 거짓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 후반에 이이가의 영주가 가난한 사무라이 츠쿠모 한시로(나카다이 다쓰야)로 인해 자신의 부도덕함과 불명예가 드러나고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할복하지 않고 모든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덮어버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걸작일 수 있었던 것은 시공을 초월한 그러한 주제의 공감대에 있다. 구로사와의 <라쇼몽>이 ‘진실의 상대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서구인들의 공감을 얻었다면, <할복>은 ‘모든 권력자는 결국 위선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는 주제로 공감을 얻는다. 여기서 그 위선의 수단은 ‘할복’이다. <할복>의 또 다른 장점은 주제와 인물을 드러내는 스토리 전개 방식, 즉 구성에 있다. 한 인물이나 사건의 비밀을 서서히 드러내는 복합적인 구성방식은 <시민 케인>, <라쇼몽]과 유사하다. 이이가에 나타난 미스테리한 떠돌이 사무라이, 그리고 회상을 통해서 서서히 밝혀지는 그 남자의 비밀, 그의 감춰진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강화되는 사무라이와 이이가 가신들과의 긴장관계가 매우 밀도 있다. 결국 한시로의 비밀이 밝혀지고, 회상을 통해 이이가의 위선을 까발리는 장면은 매우 통쾌하다.

이 작품의 완성도에 공헌한 사람은 고바야시 감독 외에도 시나리오 작가 하시모토 시노부를 들 수 있 같다.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키루], 그리고 <7인의 사무라이>의 시나리오를 공동 작업한 당대 최고의 작가였다. <할복>의 독특한 구성 방식이나 인물 간의 미묘한 대립구도나 긴장감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가 전작들에서 발휘한 재능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은 <할복>뿐 아니라, 전작 <인간의 조건>과 이후 작품 <사무라이 반란>(1967, 조우이치)등을 통해 보건 데, 일본 역사와 정신 내부의 부끄러움을 자아 비판하는 매우 양심적인 작가주의 일본 감독이다. 포장만 휴머니티가 아닌, 내부 깊숙이 휴머니티와 진실을 강렬하게 추구하는 예술가란 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할 감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