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복환모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다매체영상학과 교수)

 

만경봉호를 타고 북송을 기다리는 불쌍한 재일조선인 가족과 어린 소년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이 작품은 우라야마 기리로(浦山桐郎) 감독의 데뷰작으로, 1962년 일본영화 ‘베스트 텐’의 제2위로 평가 받은 작품이다.
제목속의 ‘큐폴라’라는 말은 주물공장에서 무쇠를 녹이는 가마라는 뜻으로 용광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되고 있는 사이타마현(埼玉県) 가와구치시(川口市)는 도쿄와 인접한 도시로 주물공장이 많아 그야말로 ‘큐폴라가 있는 거리’로 이름 지어졌다. 지금은 도쿄의 베드타운이라고도 불리우고 있으며, 훌륭한 문화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도시이지만, 일본 고도성장기에 있던 1960년 전후에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거리였다.

 

주인공 쥰(吉永小百合)은 중학교 3학년인 여학생으로, 아빠는 주물공장의 용광로 직공이며, 엄마는 비닐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남동생 다카유키는 초등학교 5학년으로 무척 명랑한 소년이다. 아빠의 공장이 대기업에 매수당하자 나이든 노동자는 모두 해고당하게 된다.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자 쥰은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다카유키에게는 재일조선인 친구 상키치가 있다. 상키치의 아빠는 재일조선인이며, 엄마는 일본인이다. 상키치 가족은 니이가타에서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인을 차별하는 아빠와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쥰과 다카유키는 상키치 가족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날, 상키치 가족은 니이가타 항구에서 김일성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북송선에 몸을 싣는다.

 

이 영화에서 쥰은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밝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희망의 소녀로 묘사되고 있다. 쥰을 연기한 요시나가 사유리는 <큐폴라가 있는 거리>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으며,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얻게 된 청순하고 명랑하며 총명한 소녀로서의 이미지로 1960년대 일본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이 영화가 제작된 당시의 일본 사회는 빈부의 격차가 심하였으며, 안보투쟁 등으로 연일 데모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요시나가 사유리가 <큐폴라가 있는 거리>에서 자아낸 신선한 이미지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얀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녀의 발랄한 모습, 절망에 쌓인 가정에서도 잃지 않는 해맑은 미소,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우정 등은 당시 일본사회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짙은 리얼리즘의 이 작품은 우라야마 기리로 감독의 개성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독은 1930년, 효고현(兵庫県)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조선소의 노동자로 일했고, 어머니는 우라야마 감독을 낳고 산고로 사별했다. 고교 3학년 때 아버지마저 노이로제로 자살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나고야대학 문학부 불문과에 진학한 감독은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어렵게 졸업을 하였다. 그의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된 ‘역경에 지지 않는 소년소녀’는 감독의 불우한 소년 시절에 영향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대학 4학년 때 쇼치쿠(松竹)영화사의 조감독 모집에 응모하여,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야마다 요지(山田洋次)등과 함께 1차 합격을 하였으나, 신체검사에서 떨어져버렸다. 이후 쇼치쿠에서 닛카츠(日活)영화사로 간 스즈키 세이쥰(鈴木清順) 감독이 추천하여 닛카츠에서 조감독으로 연출수업을 받게 되었다.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퍼스트 조감독을 거쳐 1962년에 <큐폴라가 있는 거리>로 감독에 데뷔했다.
우라야마 감독의 작품을 보면 이마무라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큐폴라가 있는 거리>가 이 것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이마무라 감독의 각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회에서 소외된 하층민들의 생활을 제재로 하고 있다. 쥰과 상키치 가족은 가난한 노동자와 재일 조선인으로, 당시 일본사회의 밑바닥 그룹이었다. 가난하고 절망적인 두 가족에 대해 당시 일본사회의 시대상을 증명하는 듯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우라야마 기리로 감독의 <큐폴라가 있는 거리>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にあんちゃん、작은 오빠,1959>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매우 흥미 있게 감상할 수가 있다. <작은오빠>는 일본의 탄광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재일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형제간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애를 잃지 않고, 밝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소년소녀의 모습은 <큐폴라가 있는 거리>의 쥰과 상키치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