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수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미후네 토시로
영화에서 “배우”는 일반 대중이 영화와 가까워지는 가장 쉬운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 배용준의 인기 상승과 함께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일본 영화 속의 배우들에 대한 관심을 통해 일본 영화와 한층 가까워 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 영화배우, 특히 남자 배우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일본 영화는 다른 나라의 영화와 비교해 자국의 전통 연예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발달해온 것으로 이야기된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일본 영화인 <단풍구경>이 1899년, 당시 도쿄 가부키좌에서 인기 있던 9대 이치가와 단쥬로와 5대 오노에 기쿠고로의 무대 장면을 담고 있음은 일본 영화가 탄생에서부터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연예중의 하나인 가부키와 관련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후 가부키의 주요 레파토리들이 영화화되는 등 영화의 내용과 형식면에서 가부키는 영화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러나 특히 일본 영화가 가부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은 영화 배우의 면에서이다. 초창기 가부키의 배우들이 영화 배우로 참가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초창기 일본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을 가부키의 온나가타(女形)라는 여장남자배우가 연기했다. 이와 같은 배우의 교류는 자연스럽게 일본 영화의 배우들이 가부키적 특징을 보이도록 만든다.

일반적으로 가부키에 등장하는 남자 배우들은 크게 다치야쿠(立役)와 니마이메(二枚目), 그리고 삼마이메(三枚目)로 나눌 수 있다. 원래 다치야쿠란 악역과 대립적인 인물로 가부키의 남자 주인공 전체를 칭하는 용어이지만, 점차 니마이메와 삼마이메와 비교하여 남성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남성주인공을 의미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일본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무라이 영화나 야쿠자 영화의 주인공이 이와 같은 다치야쿠에 해당된다. 대체로 다치야쿠는 충성과 의리에 충실하고 여성에게는 관심이 없는 남성적인 세계의 인물로 그려진다. 일본 영화 최초의 다치야쿠 스타는 오노에 마츠노스케이다. 초창기 일본 활극 시대극의 스타이기도 한 오노에 마츠노스케는 얼굴은 당시의 유명한 배우들에 비해 잘 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멋진 액션으로 악한을 물리치는 영웅호걸로서 1910년대 일본 최고의 남자배우가 되었다. 1920년대에는 이토 다이스케의 저항적인 시대극에서 권력에 대항하는 강직한 남성으로 등장한 오오코우치 덴지로오와 반도츠마 사부로가 있다.<단게사젠>에서 외눈과 외팔의 기괴한 모습으로 초인과 같은 힘을 발휘하는 오오코우치 덴지로오는 6,70년대 <자토이치> 시리즈에서 뛰어난 맹인 검객의 역할로 스타가 된 가츠 신타로와 쌍벽을 이룬다. 30년대에 들어오면 악으로 상징되는 서구와 대항하는 <구라마덴구>의 아라시 간쥬로가 대표적인 다치야쿠의 스타로 떠오른다.

 

4,50년대의 대표적인 다치야쿠의 스타는 단연코 미후네 토시로이다. 시대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남성적인 매력을 한껏 발휘하는 미후네 토시로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 온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범인을 추적하는 젊은 형사로 열연한 <들개>, 난폭한 도적 역할로 야성적인 남성을 매력을 보여준 <라쇼몽>, 무지의 농민 사무라이를 완벽하게 소화한 <7인의 사무라이>등에서 보여준 미후네 토시로의 연기는 특히 기억할 만하다.
60년대 대표적인 다치야쿠의 스타로는 <일본협객전>시리즈의 다카쿠라 켄을 빼놓을 수 없다. “죽어주십시요”라는 유명한 대사와 함께 자신의 조직 또는 동료들을 위해 의리의 마지막 한판을 벌이는 다카쿠라 켄은 70이 넘은 요즈음도 일본에서 가장 남성다운 스타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 남자 흉폭하다>, <소나티네>, <자토이치이야기>등의 기타노 다케시도 남성세계를 추구하는 다치야쿠적인 스타라고 볼 수 있다.  

 

▲ 영화 "미친 과실"
이처럼 남성다움이 강조되는 다치야쿠와 대조적인 배우가 니마이메이다. 소위 요즈음 이야기되는 꽃미남에 해당되는 니마이메는 다치야쿠에 비해 얼굴이 잘 생겼을 뿐 아니라, 여성에게 동정과 사랑을 받는 남성들이다. 다치야쿠가 국가나 조직에 대한 충성이나 의리를 중요시하는 반면 니마이메는 사랑을 중요시하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니마이메는 시대극이 인기가 있던 2,30 년대보다는 전쟁 이후의 현대물에서 스타로 탄생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치가와 라이조처럼 시대극 <네무리쿄시로>를 통해 에로티시즘적인 사무라이로서 여성에게 인기를 얻은 니마이메 스타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일본 니마이메의 계보는 우에하라 켄, 이케베 료, 사다 게이지, 가야마 유조를 거쳐 60년대 이시하라 유지로에서 절정을 이룬다. 1950년대 중반 태양족 영화와 함께 등장한 이시하라 유지로는 그 때까지 일본에 없던 새로운 스타로 탄생한다. 1956년 <미친 과실>에서 이시하라 유지로는 팔등신의 몸매와 잘 생긴 외모로 여성팬들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라면 동생과의 혈연관계도 저버리는 대표적인 태양족으로 등장했고, 이어 1958년 <태양이 비치는 언덕>에서는 부자집 막내아들이지만 버림받은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반항아로서 여성들의 동정을 자아내는 인물로 등장한다. 현재에도 “이시하라 유지로 상”을 통해 새로운 미남 배우를 발굴하고 있을 정도로 이시하라 유지로는 일본 영화 속의 최고의 니마이메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다치야쿠와 니마이메와 달리 못생긴 외모이지만 편안함과 웃음으로 스타가 된 대표적인 배우로는 에노모토 켄이치와 아츠미 키요시가 있다. 에노켄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일본 넌센스 코미디의 최고 스타가 된 에노모토 켄이치는 3,40년대 <에노켄>시리즈를 통해 춤과 노래를 곁들인 몸으로 보여주는 최고의 코미디를 만들어낸 스타이다. 69년 제1회를 시작으로 97년 특별편까지 총 49편의 시리즈로 최장수 시리즈를 기록한 <남자는 괴로워>의 아츠미 키요시 역시 일본 영화 배우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타이다. 늘 실수 연발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옆집 아저씨같은 아츠미 키요시는 일본 서민을 대표하는 일본의 국민 배우이기도 하다.

물론 다치야쿠와 니마이메, 삼마이메의 특성들이 최근의 영화 속에서는 점차 그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영화가 전통적으로 특정한 배우들을 특정 부류의 스타로 만들면서 발달해 왔다는 사실을 살펴보는 것이 일본 영화와 가까워지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