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국제문화교류추진협회에서는 일본 문화청의 위탁을 받아 문화선진국의 예술문화 정책을 조사ㆍ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는 2개년 프로젝트로서 일본의 문화진흥 발전에 기여할 예술정책을 세우기 위해 실시하게 되었는데, 조사의 중간 보고서로서「21세기 예술진흥책을 생각한다 ~ 예술진흥을 위한 법과 제도 : 유럽의 영화진흥을 중심으로」가 출간(일본어판)되었습니다. 보고서 내용 중 유럽의 문화 대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의 문화정책과 영화진흥제도, 일본의 문화정책을 연재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최근 한국도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고 있는 “한류”열풍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영화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펴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이어 나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영국의 문화정책사

조사ㆍ글 : 河島伸子 (同志社대학 경제학부 교수)

영국의 문화정책 특징을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프랑스 등 대륙에 속한 유럽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공적 지출이 낮은 편이고, 그렇다고 미국처럼 민간자금을 활용하는 타입의 자금구조를 가진 것도 아니다. 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체 둘 다 동등한 존재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준 공적인 각종 협력 단체의 역할이 매우 크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의 대처와 자금 구조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차이가 있는 것에 반해, 영국이 걸어온 문화정책 흐름은 다른 유럽 국가와 거의 보조를 맞춰왔으며, 때로는 유럽대륙의 문화정책을 리드해오기도 했다.
지금부터 영국의 문화정책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고, 몇 회에 걸쳐 현재의 제도적 특징과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책의 큰 흐름에 대해 서술하겠다. 그리고 이 글에서 문화정책이라는 용어는 예술문화 진흥정책보다 넓은 의미의 단어로서 사용하고자 한다.

■ 문화정책의 역사
일반적인 유럽의 문화정책 기원으로 다음 세가지를 들 수 있는데, 영국은 이 세가지 중 어느것도 그다지 큰 규모라고 볼 수 없다.

첫째, 교회나 왕ㆍ귀족계급 내에서의 번영.
둘째, 근대 시민사회 성립에 따라 새로운 국가만들기를 위해 국위선양의 수단으로 문화 이용
셋째, 제2차 세계대전 후 복지국가 설립 과정중의 문화

영국에서는 왕제ㆍ귀족제도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한편, 입헌군주제ㆍ의회정치제도의 성립, 교회의 세속화 등을 다른 유럽국가보다 빨리 경험한 까닭에 왕후귀족이나 교회에서의 번영이 한정적으로만 있었다. 같은 맥락이지만 빠른 산업혁명의 경험으로 근대국가가 일찍 성립되어, 국위선양을 위한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 또한 영국의 귀족들은 궁정 주변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지방에 분산되어 있어서 도회적인 사교나 살롱 생활 보다는 수렵, 정원가꾸기 등을 대표로 한 전원생활에 힘을 쏟았고, 따라서 음악이나 미술 번영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위의 세번째 기원인 복지국가와 문화정책에 대해서는 다소 양상이 다르다. 영국의 무대예술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예술문화정책의 중심적 존재인 아트 카운실(Art Council)의 설립(1946년)은 복지국가 건설과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아트 카운실은 예술문화진흥을 위해 자금을 재분배하는 공적인 조직이지만, 중립적인 개인으로서 임명된 카운실의 멤버가 최고 의사결정기관을 구성(직원도 공무원도 아닌 카운실 채용의 전문가들로 구성)하고 있는 민간색이 강한 조직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영국의 문화정책은 본 보고서에 함께 실려있는 프랑스, 독일과는 달리 자유방임주의를 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국가나 지방자치체 등의 공적부서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