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9)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는 다바이모씨의 수필을 전재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다바이모

(아티스트)

는 휴대전화가 없다.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라며 곧잘 놀라지만, 나 자신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연락수단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메일 계정은 업무용과 사적인 용도 두 개를 갖고 있으며, 집에 유선전화도 있다. 집전화기에는 자동응답기능도 있고 팩스도 수신 가능하다. 혹시 한 가지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세 개 이상의 연락수단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이다. 전기를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야 무용지물이겠지만, 그런 비상사태를 제외하면 일단 연락이 닿지 않는 일은 없다. 그런데도 ‘왜 휴대폰이 없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왜 휴대폰을 가지고 다녀야 하나요?’라고 묻고 싶다.

束芋「公衆便女(スチル)」(2006年) ⓒTabaimo/Courtesy of Gallery Koyanagi

2년쯤 전까지는 나도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다. 그 무렵은 이모티콘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시기였고, 새로운 기종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휴대폰을 살 기회를 찾고 있었다. 스타일리시한 휴대폰이나 기능이 좋은 휴대폰을 갖게 되면, 그 휴대폰이 나의 취미나 생각들까지도 전달해줄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휴대폰 스트랩이나 배경 화면도 신경을 써서 나만의 개성을 연출한다. 친구들이 갖고 있는 더 멋진 휴대폰을 보면서 일희일비하고, 점점 더 커져가는 물욕을 간신히 잠재운다. 그리고 전화나 문자를 주고 받는 데 시간을 할애하게 되며, 연락이 오지 않으면 우울해 하고 답문자 때문에 고민한다. 물론 나도 휴대전화를 없애고 처음에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구속받고 있던 것을 한번에 내던져버리자 불편은 커녕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원래부터 갖고 있는 물건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일정 부분의 구속을 벗어버리지 못한다. 메일을 보낼 때 사용하는 표현이나 이모티콘도 가볍게 선택하지 못하고, 재치 있는 친구들의 메일에는 재치 있는 문장으로 답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 나머지, 좀처럼 답을 보내지도 못한다. 자신이 메일을 보냈을 때 답이 늦게 오면 애를 태우면서도.
그런 내 안의 철저하고도 현저한 모순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그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는 실제로 몇 년 지나보지 않으면 실감하기 어렵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다바이모는 휴대폰이 없으니까’라면서 허용되는 것이 기쁘다. 이런 특권을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한 후에 깨닫게 된 것은, 휴대전화를 아무런 갈등 없이 잘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재능이 없다면, 휴대전화와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나만의 방법을 조용히 알려주고 싶다.


 

 


「をちこち」제26호(Dec.08./Jan.09)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