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응수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 이 글은 2005년 2월 25일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거행된 제1회 서송한일학술상에 시노하라씨를 추천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결과적으로 시노하라씨는 한국인이 개인 자격으로 일본인에게 주는 첫 상인 이 상을 수상했고, 요즘 같이 양국관계가 냉각일로를 걷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같은 문화교류의 귀중함이 새삼 실감됩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에 이어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욘사마(ヨン様)」로 대표되는 이른바「한류(韓流)」열풍은 근대 이후 일본인이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마이너스적 이미지를 플러스적 이미지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NHK위성방송에서 2003년 4월부터 9월까지(목요일 오후 10시 주1회)『후유노 소나타(冬のソナタ=겨울 연가)』를 방영한 것이 그 기폭제가 되었다. 한류는 관련 음반과 캐릭터 상품 등 문화컨텐츠 개발로 이어졌고, 드라마의 배경인 춘천과 남이섬에 수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찾아오는 등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 방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에 대한 예우가 미흡한 실정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본인은 지난 11월 중순 BeSeTo연극제에 참석차 도쿄를 방문했을 때, 평소의 지인인 NHK국제국의 후지모토 토모카즈(藤本 敏和)씨에게 의뢰해 피추천자인 시노하라 토모코(篠原 朋子)씨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본 바에 따르면, 시노하라씨는 현재 NHK에서 치프ㆍ프로듀서(Chief Producer)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중견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소박하고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우선 시노하라씨는 자신의 공을 내세우기 보다는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에서『후유노 소나타』가 NHK에서 방영되기까지의 경과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내용인 즉 이러하다. 당시 시노하라씨는 NHK의 외부 드라마 구입기관인 MICO(국제미디어코포레이션)에 파견 근무를 나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마루야마 토모코(丸山 智子)씨와 함께 아시아드라마를 담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두 사람은 한국 중국은 물론 태국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 방송국들이 판매하려고 내어놓은 드라마를 서로 돌아가며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후유노 소나타』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타의 드라마처럼 띄엄띄엄 검토하기 시작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감동을 받아 나중에는 자택에까지 가지고 가서 시청하기에 이르렀고, 마지막 회를 검토하는 시점이 되자 감동이 절정에 달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물론 드라마 자체가 첫사랑의 순수함을 지켜내는 내용이므로 여성인 시노하라씨에게 특히 감동을 준 점도 있겠으나, 그보다 높이 평가할 것은 씨의 그 후의 활약상이다. 자신이 감동을 받자 씨는 곧바로 동료인 마루야마와 상의했으며, 그 결과 MICO 내부의 회의를 거쳐 이 작품을 NHK에 정식으로 추천하기에 이른다.

 

 ▲ 왼쪽 위가 필자, 오른쪽 밑이 시노하라씨

 

물론 NHK 즉 일본방송협회 자체도 공적인 기관이므로 방영에 이르기까지 내부의 CP(당시 三井), 부장(당시 川上), 국장 등의 결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정 과정에서 시노하라씨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홍보를 위해 NHK 광보국의 다나카(田中)씨와 함께 NHK달력 등 선물꾸러미를 들고 한국문화원 등 한국인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처럼 시노하라씨는 온갖 노력을 통해『후유노 소나타』를 NHK위성방송에서 방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1992년부터 시노하라씨가 PD를 맡았던 NHK TV의「안녕하십니까? 한글강좌」를 통해 한국 및 한국어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그로 인해 자생된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나는 1시간 반에 걸친 시노하라씨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감지할 수 있었다.

 

생각건대, 현재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이 결과적인 것이지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고 나아가 시노하라씨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방영에 성공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위와 같은 노력 없이는 방영의 결실을 볼 수 없었던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인 만큼, 시노하라씨의『후유노 소나타』에 대한 애착이 결과적으로 한일문화교류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따라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류의 이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에 걸맞은 예우를 받지 못하는 시노하라씨에게, 그 노력을 높이 기리고자 서송한일학술상 대상자로 추천하는 바이니, 부디 수상자로 결정되어 일본에서의 한국 이미지의 전환을 가져온 기념비적 한해를 역사에 남길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