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조홍섭(한겨례신문 기자)

 

2001년 <한겨레>에서 ‘세계의 공동체’란 주제의 기획을 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한 곳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언뜻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1999년 석 달 동안 도쿄에서 아시아 리더십 펠로우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국제문화회관의 지인에게 긴급히 도움을 청했다. ‘오크 빌리지’란 곳을 소개해 왔다. ‘참나무 마을’이라…. 미국의 유명한 공동체 마을 오크 빌리지가 떠올랐다. 친절하게도 국제문화회관의 친구는 오크 빌리지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이나모토 다다시(稻本正)가 쓴 책 몇 권을 보내왔다. <숲의 행성> <숲과 마음> <숲과 자연학교> 등을 들쳐보고 깜짝 놀랐다. 목공예 장인들의 공동체인 이곳에서 나무는 단지 재료가 아니라 대안 세계를 꿈꾸는 창문이었다. 나무에 대한 종교에 가까운 믿음과 대중적인 환경교육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과 상품개발 감각까지 묘하게 어울려 사람을 끌었다. 취재가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녹색나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도쿄에서 '탄환열차'를 타고 2시간을 달린 뒤 갈아탄 특급열차 '히다'는 나가라가와의 급류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뛰며 2시간 반을 달린 끝에 '북알프스'의 관문인 산악도시 다카야마에 승객을 내려놓았다. 이튿날 택시를 타고 30분쯤 산속으로 들어가자 '자연과의 공생사회'를 꿈꾸는 목공예촌 오크 빌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빽빽한 참나무 숲에 파묻힌 듯 들어선 크고 작은 목조건물들이 아담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홍보담당자 나카무라 히데요(28)는 "이곳은 미국의 트윈 오크스 같은 생활공동체가 아니다"라며 대뜸 걱정부터 했다.

 

오크 빌리지는 목공예 장인들의 '생산' 공동체다. 직원 50명을 포함해 60명이 마을에서 생활하지만 상주하는 가족은 창립자 이나모토 다다시를 포함해 세 가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현대문명의 탈출구는 '숲 문명'이라는 확신을 구체화하려는 실험을 30년 넘게 해오고 있는 단단한 이념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백년 걸려 자란 나무는 백년 쓰는 물건으로" "밥공기에서 건물까지" "어린이 한 명, 도토리 한 알", 오크빌리지의 기본발상은 이 세 가지 슬로건으로 압축된다. 장인의 혼과 기술이 깃든 견고한 나무제품을 만들고 환경과 기술교육을 통해 지속 가능한 순환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목공은 목재를 말리는 일에서 출발한다. 대물림해 쓸 목공제품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첫 건조는 간단한 덮개만 있을 뿐 비바람이 그대로 들이치는 노천에서 이뤄진다. 이른바 반자연 건조다. 오크 빌리지의 건조원칙은 '1촌(寸) 1년'이다. 두께 3cm마다 1년씩 말려야 한다는 뜻이다. 탁자 상판용으로 쓸 목재라면 3년이 걸린다. 반자연 건조를 마친 목재는 집안의 건조한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해 다시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급속 저온건조를 거친 뒤, 이번에는 창고 안에서 한 달쯤 반자연 상태에 방치해 자연의 숨결을 되살린다.

 

마른 목재를 잘라 조립하고 다듬는 가구공방은 모터 도는 소리와 자욱한 나무먼지로 가득했다. 각종 톱과 대패, 스패너, 드릴 따위가 벽면에 잔뜩 걸려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나무 고르는 일이다. 목재의 굳기와 결을 살펴 무얼 만들지를 판단한다. 오랜 경험을 가진 베테랑 장인만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10년째 이 일을 하는 후타무라 사토로(33)는 "탁자의 상판이나 찬장, 서랍 등 변형이 적어야 하는 용도로는 결이 세밀하고 곧은 나이 많은 나무가 좋고 힘을 많이 받는 다리에는 역동적이고 심지가 강한 젊은 나무를 고른다"고 말했다. 가구가 돼서도 나무는 살아 움직인다.

 

칠공방에서는 매캐한 옻 냄새가 진동했다. 장인들은 방문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기선 미세한 먼지를 막기 위해 말하는 것도 꺼린다. 옻나무에서 추출한 갈색 옻은 공기 속에서 그윽한 적갈색으로 바뀐다. 장인은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억센 붓으로 옻을 4~5번 발라 깊은 광택을 낸다. 후지이 마사카즈(36)는 "작품을 만들려면 고운 사포질과 옻칠을 20번 이상 해야 하는데 고도의 긴장을 유지하려면 자신을 극한상태까지 가져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옻칠을 거듭하면 짙어지던 색깔이 옅어지면서 오히려 투명한 나뭇결이 살아난다"며 언뜻 이해하기 힘든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1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오크 빌리지의 장인들은 '손으로 본다'. 대팻날의 위치를 40분의 1mm까지 조절하는 것은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는 손이다. 오랜 숙련을 통해 그들은 나무와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나무는 목재나 가구가 돼서도 살아 있고, 그것을 자르고 다듬는 끌과 망치, 대패, 그리고 숫돌까지 살아 있다고 믿는다. 그런 합일의 경지에서 백년을 훌쩍 넘겨 쓸 수 있는 가구가 나온다.

 

나카무라는 음향기기를 만드는 빅터사를 박차고 3년 전 이곳에 왔다. 대량생산에 질렸고 장인의 손으로 만드는 가구와 건축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오크 빌리지에는 일본 전국에서 오늘도 사람들이 몰려든다. 나무가 좋아서, 물건 만들기를 즐겨서, 환경에 관심이 있어서, 또 자연에서 살고 싶어서.. 이들은 여기서 장인의 길을 걷거나 숲 문명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아니면 조금 비싸지만 자식에게 대대로 물려줄 가구나 완구를 사갖고 돌아간다. 오사카에서 온 히라시마(51)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오면 나무향기가 난다."

 

1974년 일본 본토 한가운데인 기후현 기요미무라 마키가호라에 문을 연 오크 빌리지는 애초 자급자족을 토대로 한 생활공동체로 출발했다. 그러나 찬 기후가 벼 재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섯명의 창립자들은 각각 별개의 회사나 기관을 만들어 독립해 오크 그룹을 이뤘다. 여기에는 오크 빌리지 말고도 기획회사인 오크 하츠, 장인 교육기관인 삼림공예학교, 세미나와 숙박시설인 오크 힐스, 환경교육을 위한 시민운동단체인 도토리회 등이 포함된다.

 

오크 빌리지에서는 목조건축과 가구, 문구, 완구를 만든다. 연간 3~5채를 짓는 목조건축은 100년 이상 가는 것은 물론 "문화유산이 될 만한" 건물로 짓는다. 전통적인 목공기술을 채용하고 설계에서 시공까지 모두 담당하며 완공 뒤에도 수리와 관리를 책임진다.

장인의 손길로 만든 오크 빌리지의 가구는 뛰어난 품질과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쇠붙이를 전혀 쓰지 않고 나무에 장부와 장붓구멍을 만들어 사개맞춤한다. 옻칠이나 식물성 기름 또는 원목 그대로 마무리한다. 300년 이상 된 참나무를 통째로 써 상판을 만든 탁자에는 120만엔(당시 환율로 약 1320만원)이란 가격표가 붙어 있다. 차 한 대 값이다. 양조회사 산토리의 10년 된 오크 통을 재활용해 만든 오디오 스피커는 마니아로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깊은 음질'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알코올이 목재 속 도관을 닦아내 마치 파이프오르간 다발 같은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완구와 문구는 애초 가구를 만든 자투리 나무를 활용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호평을 받는 강아지 완구의 가격은 2만4천엔(약 26만4천원)으로 싼 값이 아니지만 수요 맞추기가 빠듯할 정도다.
지난 81년 시작한 '도토리회' 활동은 어린이들에게 "하늘을 찌르는 참나무 거목도 한 알의 도토리에서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하게 한다. 도토리를 묘상에서 키워 해마다 식목행사를 벌인다.
삼림공예학교는 해마다 15명을 뽑아 도제식 장인교육을 시킨다. 정식 교육기관으론 인가받지 못했지만 졸업생은 목공예와 환경교육의 프로로 인정받는다. 현재 수강생은 18~60살로, 입학 경쟁률은 5 대 1이 넘는다. 수업료는 없지만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고된 생산작업을 해야 한다.

 

오크 빌리지를 창설한 이나모토 다다시(60)는 '종합환경프로듀서'란 낯선 직업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저술, 강연, 교육을 통한 '숲 문화' 전도사인 셈이다. 그는 올해 도요타 사가 출자해 만든 도요타 자연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기도 한 일본 환경교육계의 유명인사이다.

그는 놀랍게도 공동체나 환경과는 거리가 먼 핵공학을 릿쿄대에서 전공했다. 70년대 초 ‘성장의 한계’에서 지적한 화석자원문명을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궁리하다, 목공을 바탕으로 한 숲의 문명을 일구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유토피아를 지향하되 현실세계와 구체적인 접점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왜 '오크 빌리지'인가? 일본에서 참나무(오크)는 잡목 취급을 받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반면 16, 17세기 영국에는 '오크의 시대'가 있었고 당시 만든 오크가구에서 강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는 철기 시대에 도달하기 전의 나무문명에서 미래 세계의 힌트를 얻는다. 그는 사회가 여전히 금속과 플라스틱 위주라고 불평한다.

오크 빌리지의 제품 전시장을 둘러보면 오래된 나무의 그윽한 향기나 장인의 손길에 앞서 가격표에 먼저 눈이 간다. 이곳 제품의 가격은 일본 기준으로도 너무 비싸다. 부자들만 삼림문명의 혜택을 누리라는 것 아닌가? 이나모토의 답변은 명쾌하다. “이 시골에도 집집마다 차를 2대씩 갖고 있다. 차는 당연히 비싼 것으로 받아들인다. 수백년 된 나무를 장인이 정성을 쏟아 수백년을 쓸 수 있도록 만든 가구가 왜 차보다 싸야 하나. 가치관의 문제다. 게다가 가구 값에는 나무심기 등 환경을 위한 비용이 포함돼 있다.” 그는 이런 경험담도 소개했다. 직접 만든 16만엔(약 180만원)짜리 의자를 작은 아파트에 배달했는데 나중에 구입자가 이렇게 얘기하더라는 것이다. 전에는 비좁고 불편한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는데 이 의자 때문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이다.

 

그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20개국의 숲을 탐방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그가 본 한국의 나무문화는 어땠을까. 그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조선시대 가구, 나전칠기 등을 보면서 단순하면서 깊은 맛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 수준의 목공기술 전통을 갖고 있어 두 나라가 힘을 합쳐 근대 합리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연공생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오크 빌리지 홈 페이지: www.oakv.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