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기호 (평화포럼 사무총장)

지역정당 일본 가나가와네트워크 운동의 사례

1년을 예정으로 일본에 갔던 동경생활이 3년이 넘도록 길어지게 된 이유는 '가나가와네토'라고 하는 당시에는 생소한 '지역정당'을 접하게되면서 부터였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일체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우리보다 강한 일본사회에서 매우 생기있게 남에게 먼저 말을 건네며 뭔가를 의욕적으로 만들어가는 주부들의 활동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가나가와네토(이하 네토)의 주부들은 어디서 운동의 에너지를 얻는 것일까? 과연 누가 혹은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적극적인 시민으로 변화시켰는가? 이들이 지향하는 운동의 목표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고 공유해가는 것일까? 실제로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자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와 지역 그리고 생활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지 않고는 일본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가나가와네토'라는 시민운동은 생협운동을 기반으로 한 생활운동이면서 워커즈코렉티브라고 하는 시민들의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이제 뭔가 해보자고 하는 실험단계의시민단체들에게는 인큐베이터 역할(시민찰렌지기금)을 하며 새로운 비젼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 보통사람들의 연구소(시민참가시스템연구소)를 만들어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정치운동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운동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결합해가면서 지역이라는 풀뿌리에 착근하고 있는 가나가와네토는 시민운동전공자에게는 연구의 대상이고 시민단체에게는 연대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특히 1960년대 안보투쟁이후,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진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본격적인 정치를 내세우면서 풀뿌리 시민활동을 지원사격하는 운동은 드물기 때문이다.

'가나가와네토'는 1983년 생활클럽 생협운동이 성장하면서 안전한 먹거리와 환경을 고려한 생활용품들을 지켜내기 위해 조례재정 등의 필요를 느끼면서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대리인'을 지방의회에 보내는 운동으로 시작된 정치운동이다. 2003년의 통일지방자치선거이후 의원 수가 처음으로 줄어 현재34명(현의원 3인 포함, 네토전체회원은 약 5천명)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시민운동이 군부독재시절 정당의 기능을 일부 대신하고 현재에도 넒은 의미의 정치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시민운동과 정치운동의 선을 비교적 명확히 긋는 일본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생활자운동에 기반을 둔 시민운동형 정치운동은 일본사회에서도 매우 특이한 것이다. 자민당, 공산당 등 중앙의 정당을 포함하더라도 당명이 바뀌지 않고 20년이상 지속된 정당이 일본사회전체에서 불과 대여섯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기존의 정치생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앞서 언급한 호기심들에 대한 나의 해답은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정치란 삶의 연장선에 놓여있고 안전하고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고 대신에 생활정치를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토는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 자신들의 원칙을 정하고 있다. 예컨대, 의원들은 임기를 두번 이상할 수 없고 교대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의원들의 월급은 모두 네토에 기부하고 의원들은 그중의 일부만을 활동비로 지급받는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의원들은 상당한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그래서 이들의 기부금은 2001년의 경우 우리 돈으로 51억원에 해당할 만틈의 재정적 토대를 이루어 낸다. 의원월급을 전액 기부하고 활동비로 받는 다는 것은 시간, 돈, 지위를 서로 공유하자는 기본원칙을 지키려는 것이다. 돈과 지위는 정치를 위해 필요하지만 목표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네토는 선거기간을 사람들과 접하고 지역의 문제를 공론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보고있다. 그들이 무엇을 변화시켜왔고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생활정치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후보자가 돈을 들여서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십시일반하여 선거에 임하고 책임도 함께 짐으로써 누구든지 부담없이 선거에 나갈 수 있고 추천할 수 있다. 물론 여러 사람과 인터뷰를 해본 결과, 역시 남편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것이 필요했고 80년대초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토의 의원이 아직 모두 여성이고 회원들 또한 대부분이 주부라는 점에서 남편은 물론 일반 남성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네토의 또다른 과제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네토의 에너지는 회원들이 정치운동을 통해서 스스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잘 쓰는 말 가운데 '얏테 미(やってみ)'와 '핫신(発信)'이라는 말이 있다. 전자는 일단 좋은 생각이라고 판단이 되면 먼저 해보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곧 이들의 상상은 곧 실험이고 실현이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이들은 생동감있는 삶에 대한 존재감을 체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구상과 실험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서로 토론하고 발표한다. 그래서 그들의 메시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지역발로 알리는 것이 중요한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거의 모든 참가 회원들은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거나 발표를 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한다 표현하는 것이 곧 정치이고 자기가 성장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이 주부들의 수첩을 보면 한달일정이 거의 회의로 까맣게 채워져있다. 똑 같은 이야기를 왜 그토록 반복해서 회의를 하냐고 물어보면 '책임(accountability)이란 상대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력이 아니라 삶에 근거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욕구,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배려와 격려로 만들어가는 분위기, 그리고 표현과 대화를 통한 자신들의 메시지가 생성될 수 있는 장이 항상 새로워질 수 있는 정치를 만들어내고 그래서 자신들의 에너지를 자가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리더쉽 또한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가나가와네토는 어디서나 벤치마킹한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일반모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실험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람과 삶터를 핵심으로 하는 열린 공동체운동은 역동적인 한국의 시민운동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선거정치보다는 생활정치를 활성화시키는데 주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