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민병찬(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해마다 일본에 가서 꼭 보는 전시가 있다.
奈良國立博物館에서 매년 10월말에서 11월 초에 개최하는「正倉院展」이다.
正倉院! 奈良市 도다이지(東大寺)에 있는 고대 일본 왕실 보물창고로, 고대 한국사관련 유물이 종종 발견되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명칭이다. 매년「正倉院展」이라는 정기 전시회를 통해 소장품을 일반인에게 公開하고 있으며, 역사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꼭 보고 싶어 하는 展示이다.

 

내가 처음「正倉院展」을 본 것은 1998년이다. 물론 그 전부터 무척 전시를 보고 싶었지만, 일년에 딱 한번, 그것도 2주간이라는 짧은 展示期間으로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98년도에 일본국제교류기금의 펠로우쉽 프로그램으로 6개월간 日本에 체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때마침「正倉院展」이 開催되어 잔뜩 기대하고 東京에서 奈良까지 不遠千里하고 한걸음에 달려가 보았던 적이 있었다. 展示場은 많은 人波로 붐볐고, 여기저기서 ‘素晴らしい(스바라시이:훌륭해)’라는 感歎詞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기대했던 것만큼 큰 感動이 없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큰 失望을 하였다. 전시 마지막 날이라 많은 인파로 인해 전시품 앞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도, 한 전시품을 자세히 관찰할 수도 없었던 관람환경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전시되어 있는 유물이 내가 기대했던 명품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은 당시를 대표하는 최고 품격의 보물들임을 익히 알고 있기에, 당연히 正倉院展에 전시된 유물도 모두 명품 일색일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명품이외에, 그 옆에 그것을 쌌던 보자기, 그 옆에 묶었던 끈, 그 옆엔 그것을 담았던 상자 등이 순서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결국 전체 전시장에는 실제 명품이랄 수 있는 유물은 삼분의 일 정도였고, 나머지는 보관했던 상자나 포장재였다. 또한 전시품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관람객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유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평상시 볼 수 없었던 왕실의 보물을 직접 實見했다는 사실 자체에만 매료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단순히 전시회의 관람 차원이 아니라 유물을 숭배하는 신앙의 차원에서 감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正倉院展을 처음 관람한 이방인에게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며칠 후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대학생(그 학생은 박물관과 전혀 무관한 분야을 공부하고 있었음)과 대화를 나누던 중 正倉院展이 잠시 주제로 등장하여, 전시에 대해 물어 보았더니 서슴없이 너무나 훌륭한 전시였고,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대답했다. 어디서 그렇게 큰 감동을 받았냐고 물었더니, 학생 曰 '고등학교 역사책에서 배웠던 보물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감격했어요'라고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결국 正倉院展은 신앙의 대상, 혹은 교과서에서 본 것을 확인하는 일본사람만의 잔치에 불과한 것일 뿐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전시회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그 후, 특별히 관람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나, 인연이 되어 매년 볼 수 있었고, 그때마다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2년 전인 제54회 전시회를 보고 正倉院展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 전시는 여느 전시와 달리 한국 관련, 특히 신라관련 유물이 많이 출품된 전시였다.
북적이는 관람인파와 전시방법 등 전체적인 분위기는 예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나, 고대 한국과 직ㆍ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유물이 다량 출품되었기에 처음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관람하였다. 개별 전시품에 대한 설명문을 찬찬히 읽어가면서 전시를 보던 중 ‘놋쇠 숟가락(佐波理匙)’의 전시품에 이르렀다. 신라에서 만든 것으로, 아직도 숟가락 사이에는 이동 중에 생길지 모르는 파손을 막고자 넣은 완충 종이가 처음 그 상태대로 싸여 있었다. 눈이 번쩍 떠졌다. 저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신라 역사를 다시 쓰게 했던 그 유명한 ‘신라 촌락문서’가 아니었던가! 저것을 지금이라도 당장 풀어 포장지의 글을 확인하면 또 다시 새로운 신라의 역사가 밝혀지는 것이 아닌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왔다. 그 옆에 ‘놋쇠 그릇(佐波理加盤)’이 그것을 포장했던 포장지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 황갈색 닥종이인 포장지에는 괘선과 함께 한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신라에 대한 새로운 기록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신라시대 일반 백성들의 구체적인 생활모습을 기록해 놓은 또 다른 ‘신라 촌락문서’였다. 감추어진 우리의 역사가 새롭게 밝혀지고, 더욱 풍성해지는 그 순간이었고, 고등학교때 국사교과서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외웠던 내용의 원본을 직접 대변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 순간에 어찌 아니 전율할 수 있으며, 어찌 아니 감탄할 수 있겠는가! 그 동안 正倉院展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의구심들이 순식간에 풀리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왜 그렇게 보물뿐 아니라 그것을 포장했던, 혹은 담았던 상자까지 소중하게 전시하고 있는지를, 또 어린 학생부터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왜 그렇게 감탄사를 연발하였는지를.

 

나에게 있어서 正倉院展은 단순한 전시의 의미를 뛰어넘어 일본의 문화를 몸으로 직접 느끼게 해준 산 교육장이었으며, 서로의 문화에 대해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게 해준 통로였다. 나아가 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가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세계인 모두의 것이며, 문화재에 있어서만큼은 내셔널리즘(Nationalism)과 코스모폴리탄이즘(Cosmopolitanism)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