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정희(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월의 흐름이 이렇게도 빠른 것인가. 안식년을 맞아 일본 츠쿠바 대학에서 1년간 생활한 것이 벌써 7년 전의 일이라니.. 올해 나는 두 번째의 안식년을 이용해 미국 오레곤주의 남오레곤대학(Southern Oregon University)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복잡한 대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취향 때문에 이번에도 애슐랜드라는 작은 도시를 선택했다. 츠쿠꾸바보다 작은 도시이지만, 사회 문화적 환경과 자연환경에 있어 매우 유사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츠쿠바가 츠쿠바산을 함께하고 있듯이 애슐랜드 역시 애슐랜드산을 뒤로하고 있다는 점과, 두 도시 모두 대학도시이며 동시에 문화도시로서 문화행사가 연중 계속된다는 점이다.

 

바쁜 서울을 떠나 츠쿠바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 여유로움의 참 뜻을 알게 되었다. 츠쿠바산의 남체산(南体山)과 여체산(女体山) 봉우리에 올라 바라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색다른 감흥을 주었고, 시내 곳곳에 조성된 공원의 산뜻함은 연구 활동의 긴장을 풀어 주는 피로 회복제였다.

 

그러나 츠쿠바에서의 생활이 풍요로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일본 시민사회와 이익집단정치에 대한 연구가 안식년의 연구주제였지만, 실상 교과서나 학문적 연구 성과를 통해 일본 시민사회를 규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평범한 일본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귀중한 소득이었다. 츠쿠바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과의 만남은 물론, 일본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1년간 다녔던 두 아이들을 통해 얻은 간접 경험 역시 소중했으며, 테니스를 함께 즐기면서 만났던 일본인들, 외국어공부를 하는 Hippo 클럽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일본사회의 속내를 접할 수 있었다. 평소에 지니고 있었던 일본인과 일본사회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도 했고, 어느 측면에서는 기존의 생각이 더욱 굳어지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만남을 통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두 아이들이 다녔던 아즈마(吾妻)중학교와 나미키(竝木)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일본어가 서투른 둘째 아이를 위해 남다른 신경을 써준 선생님들과 자원해서 일어를 가르쳐준 일본인 학부모들의 마음, 큰 아이가 정원 외 특별 전형을 거쳐 입학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나미키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세심한 배려가 아직도 정겹게 느껴진다. 큰 아이의 담임이었던 요코다 게이코(橫田京子) 선생님께서 보여준 자상함과 조용한 배려는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이었다. 일본 공교육의 붕괴를 염려하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선뜻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츠쿠바에서 만난 선생님들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츠쿠바 사람들은 히포클럽 회원들이다. 매주 한번씩 공공장소를 빌려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 그 방식이 독특했다. 영어는 물론, 불어, 스페인어 등 온갖 외국어를 노래와 율동을 통해 남녀노소, 언어능력 수준에 상관없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이었다. 물론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아마도 지난 수년간 한국 영화와 음악이 크게 유행하고 겨울연가의 욘사마 붐에 힘입어 히포클럽에서도 한국어 열풍이 강하게 불었으리라. 외국어와 외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인지 모두 개방적이고 트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츠쿠바 히포클럽의 리더격이었던 마가리야마(曲山) 가족들의 항상 웃는 모습과 다정함이 지금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히포클럽 회원들처럼 다수의 일본인 특히 일본 정부 인사들과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 교과서를 통해 일본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주변국과의 관계사를 왜곡하면 할수록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츠쿠바에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이름 모를 한 여학생이다. 7년 전 여름 캠퍼스 안을 흐르는 시냇가에 앉아 있던 그 여학생은 8월 따가운 햇볕 아래서 약 2주일 동안 무언가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양산을 쓰고 앉아 있던 그 여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물어본 결과 생물학부 졸업논문 준비를 위해 빨간 잠자리 수를 시간대 별로 세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무언가에 몰두해서 결과를 얻어내려는 집념과 끈기를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한편 미련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 우물을 파는 일본 학계의 전통을 한 여학생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츠쿠바에서 1년 간 생활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일본인과 일본사회를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츠쿠바의 특수한 문화적 환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관심을 넓힐 수 있고, 더 나아가 민간 수준에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한일 정부간 정치, 외교 문제가 어려워질수록 이를 부드럽고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민간 교류의 장이 넓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시민사회의 발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