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부터 기획시리즈「책 속의 일본」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본 기금의 펠로십 등으로 일본에서 체재한 경험이 있는 한국의 각계 인사들의 "책 속에서 느끼거나 알게 된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1년 간 연재할 예정입니다.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저명 인사들의 일본에 관한 책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애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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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야마 다카오의「兵士 시리즈」… 자위대 내부를 보는 窓

 

글 : 오 동 룡 (월간조선 기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말년을 보낸 순푸성(駿府城), 만년설에 뒤덮힌 후지산(富士山)의 영봉…이즈반도를 따라 펼쳐지는 시즈오카의 천혜의 자연 풍광은 딱딱한 일본 자위대 연구로 1년을 보낸 기자에게 커다란 위안거리가 됐다.

아침마다 시즈오카현립대 연구실 창을 열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오는 후지산, 원두커피 한잔에 일본의 대표적인 통키타 가수 미나미 코우세츠(南こうせつ)와 이루카(イルカ)의 노래「간다가와(神田川)」「나고리유키(なごり雪)」를 듣고 있노라면, 진한 감동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자위대 연구를 한답시고 자위대 책에 묻혀 살면서 일본은 정말 출판대국이란 사실을 실감했다. 자위대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인데도 군사서적 출판 건수는 상당 수준이다. 언젠가 심심풀이로 온라인서점「아마존」에「軍事(군사)」란 키워드를 입력해 본 적이 있다. 노트북 화면의 모래시계가 굼뜨게 움직인다 싶더니 4,500여종의 책이 검색 창에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자위대라는 이름의 학교」「주일미군 재편」「일본의 군사시스템」「군벌흥망사」「無音潜航(무음잠항)」「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 평전」「자위대가 군대가 되는 날」...「전투 심리학」. 전투심리학은 전투시 병사들이 겪는 심리적 恐慌(공황), 사람을 죽일 때의 심리 등을 자세히 묘사한 책으로 한국의 직업 군인들조차 접한 적이 없는 책이다. 평범한 책부터 그로테스크한 군사서적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중 나의 눈길을 끌었던 책은 단연 일본 논픽션작가 스기야마 다카오(杉山隆男)의 「병사를 따르라!」다. 원제는「兵士を追え」로 주간「사피오」에 45회에 걸쳐 연재된 것을 묶어 작년 7월말 小学館(소학관)에서 출판했다.

 

「병사를 따르라!」는 그의「兵士(병사)시리즈」중 3부작으로, 일본 해상자위대의 잠수함과 대잠초계기에 동승해 대원들을 인터뷰한 것이다. 그는 1부작으로 육상자위대를 취재해 1995년「병사에게 물어보라(兵士に聞け)」를 발간했고, 2부작으로는 F-15전투기에 탑승하는 등 항공자위대 취재를 통해 2001년「병사를 보라!(兵士を見よ)」를 펴냈다.
3부작「병사를 따르라!」에서 그는 최고 기밀 요새인 잠수함과 대잠초계기 P-3C에서 장시간 병사들과 함께 숙식하면서 그들의 일과와 훈련의 모습을 눈앞에서 그리듯 묘사했다.

 

일본 육해공 자위대 현지 취재를, 일본 언론 사상 최초로 12년에 걸쳐 해오고 있는 사람은 스기야마 다카오가 유일하다. 때문에 자위대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책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의 노력의 결과로, 일본인들은 25만명의「무생물」같은 자위대원도 똑같이 아프고 상처받을 수 있는 이웃이란 인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가 바라보는 자위대의 시각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무분별한 자위대 찬양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헌법9조 논의나 자위대 해외파병(PKO) 문제가 당사자인 자위대원을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는 상황, 패전 후 50년이란 세월을 천덕꾸러기처럼 살아온 것에 대한 자위대원들의 견딜 수 없는 절규와 고뇌를 자위대원의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논픽션의 세계에서 金科玉條(금과옥조)가「인간」을 그리는 것이라면 스기야마 다카오의「병사 시리즈 3부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다. 그의 책에는 오타쿠(매니아)들이 즐기는 장비연감류의 무기나 병력 이야기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병사들이 토해내는 고된 숨소리와 애환만 들릴 뿐이다.

 

1952년 동경에서 출생해 히토츠바시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한 스기야마 타카오(杉山隆男)는 요미우리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논픽션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는 1986년「미디어의 흥망」으로 주목을 받았고, 1995년 자위대 시리즈 1부작「병사에게 물어보라!」로 新潮芸賞(신조학예상)을 받았다. 그의 현장 취재 능력을 높이 산 방위청은 언론 취재 금지 관행을  깨고 일찍이 그에게 자위대 기지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자위대 현장 취재를 하기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기자는 얼마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2003년 걸프지역에 배치됐던 해상자위대 이지스함「키리시마호」탑승기회를 얻었다가 최후의 순간에 거절 당한 적이 있다. 담당 해상자위대 자위관은『일본 국민들에게도 보안을 위해 공개하지 않는 함정』이라며 외국인에게는 더더욱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자위대원을 취재하면서 평상심을 잃지 않던 스기야마 다카오도 북한문제를 언급하면서는 어쩔 수 없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1999년「북한의 괴선박 사건」은 일본이 패전이후 자위대가 최초로 실탄사격을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스기야마 다카오는 이때 대함초계기에서 폭뢰를 투하한 다나카 중령의 엄지손가락을 가리키며 패전후 일본을 옭아매고 있던 저주의 사슬을 끊은 손이라고 추켜세웠다. 자위대 간부를 양성하는 방위대학교 졸업식 대목에서 스기야마 다카오는 자위대의 위상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졸업식장에서 축사를 하는 방위대학장들은 언제나「방위대의 살아있는 아버지」라 불린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수상의 방위대학 연설을 인용한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자위대 재직 중 결코 국민들로부터 감사를 받거나 환영을 받는 일 없이 자위대 생활을 마감할지도 모릅니다. 자위대가 국민으로부터 칭송을 받을 때는 외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국가가 存亡(존망)의 위기에 처한다거나, 재해가 발생했다거나, 국민이 곤궁하고 국가가 혼란에 직면해 있을 때뿐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히가케모노(日陰者-떳떳이 세상에 나와서 살지 못하는 전과자 등을 말함-注)」가 되는 편이 국민이나 일본은 행복할 것입니다>

 

홋가이도 지진이 발생했을 때 손에 장갑도 끼지 않은 채 구조활동을 벌이다 옷이 찟겨지고 손에 가시에 찔리는 자위대원의 모습을 본 스기야마는 요시다 전 수상의 말대로 자위대가 주목 받을 수 있는 것은 군인 본연의 임무가 아닌 재난 구조활동 뿐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스기야마는 자위대의 이런 모습을「施設科 部隊(시설과 부대)」라고 비하했다.
세계 톱클래스의 군사력에 30만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을 군대라고 하지 못하고, 병사는 대원이라고 하는 현실. 일본인인 스기야마 다카오에게도 현재의 자위대는 이상한 군대인 것이다.

 

여당인 자민당이 자위대를 자위군으로의 격상시키고, 해외에서의 무력행사를 허용하고, 專守防衛(전수방위) 원칙을 포기하는 것을 골자로 한 헌법개정안 초안을 확정하는 등 일본 자위대의 힘은 날로 커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에게 자위대는 아직까지「전과자」에 불과하다.
때문에 자위대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한국인들은 자위대를 책상머리에서 무기체계나 병력 등으로만 파악해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날로 커가는 자위대 위상 속에서 자위대원들은「자위대의 그늘」로 남아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타 다큐멘터리 작가 스기야마 다카오의「兵士 시리즈」를 통해 힘 안들이고 자위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窓(창)을 갖게 된 것은 일종의 행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