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안된 일본 체재경험 중,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맛이 있다.
십 수년 전으로 기억된다. 교토의 한 허름한 이자카야에서 일본인 지인들과 오랜만에 서로의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하나 둘 끄집어냈다. 이자카야의 다양한 안주 속에서 난 행복했고 옛 지인들을 만나 더없이 즐거웠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작별을 고하려는 생각에, 난 머리 속에서 분주하게 인사말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한 일본친구가 “자 오차즈케로 마무리를 하지”라며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음식을 받아들일 위의 공간은 없었다. 난감했다.
얼마 후, 나온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숭늉 같은 물에 밥이 담겨 있었다. 밥 위에는 분명김 부스러기 내지는 가쓰오부시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마무리라는 말에 위에 부담 없는 후식, 그러니까 차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 밥, 다시 식사를 하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오차즈케란다. 이내 일본인의 오차즈케에 대한 안내로 의아함으로 가득했던 머리 속은 해결되었다. 이제는 만원인 위 속을 채울 일만 남았다.

조심스레 한 숟가락을 입어 넣었다. “おいしい~!!”란 말이 나도 몰래 튀어나왔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맛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식탐에까지 도달.

급기야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말았다.
밥도 밥이었지만, 유독 그 국물의 그윽하고 그날의 술독을 녹이는 듯한 느낌은 잊을 수 없다. 그 때 나는 일본인들이 술자리 마지막 코스로 오차즈케를 찾는 당연한 이유를 알게 되었고, 오차즈케를 마지막 코스로 넣은 일본인의 탁월한 센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오차즈케의 존재는 아마도 이런 것일 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을 종합하여 피력하면, 집에서 혼자 먹기엔 왠지 허전하고 쓸쓸한 오차즈케. 이런 오차즈케를 술 동무들과 함께 했을 때, 오차즈케의 단출하고 소박한 맛은 화합의 절묘한 맛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오차즈케는 원래 에도시대 거대상인의 집에서 일을 돕던 인부들이 일하는 틈을 이용하여 식사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오차즈케만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도 생겨 여성들에게도 인기메뉴가 되고 있으며, 오차즈케의 밥에 얹는 재료 또한 다양해져 전통의 우메보시, 다쿠앙, 쓰케모노는 물론이거니와 날치, 가다랑어, 고등어, 연어, 도미 등까지 무궁무진한 재료가 일본인을 오차즈케에 매료시키고 있다.  

얼마 전 일본 친구로부터 인스턴트 오차즈케를 받았다. 옛날 교토의 그 맛에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그 때를 떠올리며 한잔 걸친 귀가 후, 이번엔 호젓하게 혼자 음미해 보고자 한다. 지금과는 다른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글: 일본어부 강좌운영팀 주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