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계절 가을에는 다른 요리도 마찬가지겠지만, 과자도 한층 더 깊은 맛으로 만들고자 하는 때이다. 단풍을 흉내낸 형형색색의 과자들이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물론, 가을의 대표 미각인 “밤”을 이용한 과자가 다양한 모습으로 가게마다 앞 다투어 진열된다.

팥에도 크림에도 잘 어울리는 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자에 빼놓을 수 없는 소재. 밤을 소재로 한 서양 과자로는 마론 종류나 몽블랑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일본의 경우 서양 과자보다 종류가 더 많은 듯 싶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양갱 속에 노랗게 밤이 보이는 栗羊羹(구리요캉). 팥소에 꿀을 묻힌 후 밤을 붙인 栗鹿の子(구리카노코). 삶은 밤을 으깬 후 설탕을 넣어 다시 익힌 다음 삼베천으로 꼭 짜낸 菓きんとん(구리킹통). 이 외에도 밤을 넣은 만쥬나 모나카, どら燒き(도라야키) 등이 있다. あん蜜(앙미츠)나 おこわ(오코와:찹쌀 팥밥)에도 밤을 넣을 정도니까 일본인은 무척이나 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栗羊羹
栗鹿の子
생각해 보면 일본인의 식생활과 밤과의 인연은 깊다. 먼 옛날 죠몽, 야요이 시대 무렵부터 밤은 호두나 도토리, 칠엽수 열매와 함께 귀중한 식량이었다. 나라 시대의「万葉集」에 山上憶良(야마노우에노 오쿠라)가 “爪食めば子ども思ほゆ 栗食めばましてしのはゆ....(*)”라고 읊었던 것이 생각나는 사람도 있으리라.
헤이안 시대에는 지방에서 조정에 바치는 조공 물품으로 사용되었는데, 무장들 사이에서는 출진 및 승리의 축하나 정월 축하의례 등에 かち栗(勝栗-말린 밤을 절구에서 가볍게 빻아 겉껍질과 속껍질을 골라낸 것)를 준비했었다.

다도(茶道)가 융성했던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는 다도회 과자로서 밤이 매우 인기가 있었다. 다도회 기록을 보면 ‘燒栗(야키구리)’나 ‘打栗(우치구리)’, ‘水栗(미즈구리: 일설에는 물에 적신 밤)’ 등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에도 시대가 되면서 밤과자의 종류도 많아졌지만 특별히 주목할만한 것이 栗粉餠(구리코모치)이다. 이름 그대로 밤 가루를 묻힌 떡인데, 다도회 기록만이 아니라 일본어를 포르투갈어로 해설한 사전「日葡辭書」(1603년)와 과자제조법「古今名物御前菓子秘傳抄」(1718년)에도 기술되어 있다. 당초에는 밤 가루를 묻히는 것만으로 끝나는 간단한 제조법이었으나, 현재에는 팥소에 성글고 오돌도돌한 형태로 밤소를 붙여 만들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고 있다.
밤은 단백질이 풍부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여러가지로 궁리하면 과자는 물론 요리에도 폭 넓게 쓰일 수 있는 좋은 재료이다.


(*) 爪食めば子ども思ほゆ 栗食めばましてしのはゆ....(우리하메바 고도모오모오유 구리하메바 마시테시노와유) – “오이를 먹으니 문득 자식이 생각나고, 밤을 먹으니 자식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라는 뜻


글과 사진을 제공해 주신 虎屋(도라야)와 나카야마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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栗粉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