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서 그것도 중년을 넘긴 나이가 되면 묘하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45세가 지나면 그 때까지 없었던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등의 동창회가 돌연 열리기도 한다. 열린다 하더라도 참가하지 않았을 동창회에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참가하게 된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은 옛날을 그리워한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현재보다도 이미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과거에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일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다다스노모리(糺の森)

나에게 있어 그런 추억어린 초등학교 시절과 함께 떠오르는 추억의 장소가 바로 ‘다다스노모리’이다. 이곳은 교토시 북부의 가모가와(鴨川)와 다카노가와(高野川)의 합류지점인 삼각주에 있는 시모가모진자(下鴨神社) 경내에 펼쳐져 있는 숲이다. 초등과 중학시절에는 이 숲을 자주 찾아 가 놀곤 했다. 이 숲은 교토의 시가지에 있으면서도 자연 그대로의 숲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이 숲에 들어가자면 시모가모진자의 참배로를 지나가야 하지만, 어린이들은 이 길을 통하지 않고 옆길을 이용하여 숲에 들어갔다. 숲은 주변의 주택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넓은 차도에서 그 주택단지의 집과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서면, 돌연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것은 아주 갑작스런 출현으로, 눈 앞에는 태고 이래의 숲이 펼쳐지는 것이다.
숲은 교통이 편리한 장소에 있어서인지 당시(1960년대후반부터70년대전반)유
행하고 있던 TV시대극과 영화의 촬영이 종종 있곤 했다. 촬영장면을 친구들과 먼발치에서 에워싸 보곤 했었다. 숲 속은 근처 주민들의 산책코스가 되기도 했다. 당시, 유가와히데키(湯川秀樹)박사(일본최초의 노벨상수상자)도 숲의 바로 옆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그 분이 산책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처럼 교토시민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숲이었던 까닭에 당시 이 숲의 역사적인 의미 등은 전혀 몰랐다. 그러나 이 숲은 교토의 역사상 중요한 곳이다. 해안쿄(平安京)가 수도로 정해진 무렵에는 이미 진자와 숲이 존재했다 하니, 그 역사는 유구하다. 또한, 해이안(平安)시대에는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마쿠라노소시(枕草子)』에도 등장하는 가모노마쓰리(加茂の祭:현재의 아오이마쓰리(葵祭))의 중요한 무대도 바로 이 다다스노모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된 와카슈(和歌集)인『신고킨와카슈(新古今和歌集)』등에서도 이 숲을 노래한 시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가마쿠라(鎌倉)시대에『호죠키(方丈記)』를 쓴 가모노쵸메이(鴨長明)는 가와이진자(河合神社)의 일을 대대로 담당하는 집안에 태어났으나, 결국 요직에 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호죠키를 집필했다고 한다. 현재는 가와이진자의 경내에 가모노쵸메이가 살았던 진자의 작은 암자가 복원되어 있다.(단, 당시 암자는 경내에 있던 것이 아니라 교토 주변의 산 속에 있었을 것이다.)


다다스노모리에 가게 되면 근처 찻집에서「미타라시단고(みたらし団子)」의 맛보기를 권하
미타라시단고(みたらし団子)

고 싶다. 이것 또한 예부터 있던 추억의 먹거리로 하얀 단고를 가볍게 구워 내, 그 위에 간장에 설탕은 넣은 시럽을 듬뿍 뿌린 과자다. 얇은 꼬챙이에 5개의 단고를 꿰어 놓는데, 가장 위쪽의 하나를 나머지 넷과 조금 떨어진 지점에 꿰어 놓는다. 이것은 옛날 다다스노모리 안에 있는 미타라(御手洗)라는 연못에 천황이 손을 담근 곳에서 포말이 하나 떠올라 잠시 후 4개의 포말이 연이어 올라 왔다는 전설 내용을 단고로 나타낸 것이라고 어린 시절 조부모에게서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먹으면 맛 또한 각별할 것이다.

 

일반 교토관광가이드북에 시모가모진자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소개가 되어 있으나, 이 다다스노모리에 대한 안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교토의 시민이라면 누구나가 잘 알고 있는 장소이면서 역사적으로는 중요한 곳이라는 숨은 명소이자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이기도 하다. 다다스노모리를 유유히 산책하며 교토의 수백년 역사를 더듬어보길 바란다.

 

(일본어교육전문가 기타무라다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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