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기념 영화제(7/1~8/29)>에 즈음하여, 세계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구로사와 영화의 매력과 영화 관람 포인트를 [7인의 사무라이],[라쇼몽],[가게무샤]등의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5) 완숙기

 

 일본의 영화 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가 <7인의 사무라이> 이후 초기의 도덕적 관심을 버리고, 주로 슈퍼맨 사무라이에만 의존함으로써 뚜렷한 퇴보를 겪어 왔다고 평하고 있다. 그건 어쩌면 <라쇼몽>, <이키루>, <7인의 사무라이>에서 얻어진 명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인 것 같다. 절정기의 작품에 비해서 여러 가지로 미흡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퇴보’라고 할 만큼 그 이후의 작품들이 처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1950년대 후반 <거미집의 성>(1957)에서 1960년대 중반 <붉은 수염>까지의 작품들은 <라쇼몽> 이전의 초기 10편의 작품에서 보인 거칠고 어설픈 실험, 불완전한 완성도에 비하면, 대가로서의 느긋함과 완숙미가 돋보인다. 1950년대 초의 절정기 때와는 달리 그다지 욕심 부리지 않고 뛰어난 유머 감각을 발휘하기도 했다. 오히려 그에게는 가장 무난한 작품을 만든 활동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 당시의 작품들 대부분이 대중적인 성공과 예술적인 평가를 동시에 얻었다는 사실은 일본의 유명 잡지 키네마 순보의 데이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은 걸작 2위 흥행 5위,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1960)는 걸작 3위, <요짐보>(1961)은 걸작 2위, 흥행 4위, <Tm바키 산주로>(1962) 걸작 5위, 흥행 1위, <천국과 지옥>(1963)은 걸작 2위, 흥행 1위, 특히 <붉은 수염>(1965)는 걸작, 흥행 모두 1위를 하였다.(<거미집의 성>과 <밑바닥>에 대한 데이터는 빠져 있음) 이 시기에 주인공 미후네 도시로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요짐보>, <쓰바키 산주로>로 두 번 연속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배우로 올라서기도 했다. 이때 만든 작품으로 주의 깊게 볼 만한 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각색한 <거미집의 성>(1957)과 일본 시대 영화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사무라이 오락 영화의 걸작인 <요짐보>(1961), <쓰바키 산주로>(1962), 그리고 유괴사건을 다룬 형사물 <천국과 지옥>(1963), <붉은 수염>(1965)이 있다.

 

 <거미집의 성>(蜘蛛巣城)에 대해 브리테니커 사전에선 ‘원작『맥베스』의 한 구절도 직역하지 않으면서 중세 스코틀랜드 분위기를 일본 배경으로 옮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라쇼몽>에서도 그랬지만, 구로사와는 원작을 각색하더라도 본래의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반드시 자신의 색깔을 덧칠하곤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의 핵심이 대사에 있다면 구로사와의 핵심은 시각적인 이미지에 있다는 것을 입증한 걸작이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할리우드 모험 액션영화 장르를 절묘하게 일본 시대배경으로 만든 오락영화다. 그 구성과 캐릭터는 잘 알려져 있듯이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의 기본 뼈대가 되었다. 떠돌이 사무라이가 주인공으로 나온 <요짐보>와 <쓰바키 산주로>의 성공은 일본에 사무라이 액션영화 붐을 일으켰고, 서부영화 영향을 받긴 했지만, 역으로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특히 <요짐보>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1962)로 리메이크되어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기의 두 사무라이 영화는 특히 라스트 결투장면으로 유명하다. 올해 마이클 니콜스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천국과 지옥>(天国と地獄)의 원작은 미국의 추리소설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불가피한 모순구조인 부자와 빈자 간의 적대감을 ‘유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붉은 수염>은 일본판 ‘동의보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로사와 영화 서사의 특징 중 하나인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데뷔작 <스카타 산시로>처럼 일종의 성장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정국(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