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수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일본 영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특별한 영화이다. 1951년 베니스영화제의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라쇼몽>은 일본의 시대극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패전이후 일본인이 서구인에 대해 갖고 있던 열등감에서 벗어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2년 베니스 영화제 50주면 기념 회고전에서 역대 베니스영화제 수상작 중 최고상인 ‘사자중의 사자’상을 <라쇼몽>이 수상했다는 사실은 일본인들에게 더 큰 자랑거리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라쇼몽>이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것은 그것이 일본 영화이기이전에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미조구치 겐지가 여성을 통해, 오즈 야스지로가 가족을 통해 일본을 그리고 있다면 구로사와 아키라는 남성을 통해 일본을 그리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 <라쇼몽>은 남성과 여성을 넘어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라쇼몽>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두 개의 단편 <라쇼몽>과 <덤불속>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이 극도의 상황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 되는 인간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에 비해 구로사와 아키라는 그의 영화 속에서 일관적으로 추구해온 휴머니즘을 담고 있다.

 

영화는 한 강간 살인 사건과 관련된 네 명의 등장인물이 들려주는 서로 모순적인 증언들을 통해 하나의 현실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주관적 시각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영화는 비를 피해 다 허물어져 가는 라쇼몽이라는 문 아래 모인 승려와 나무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은 지금 막 한 강간 살인 사건의 증인으로 참석하고 돌아오는 참인데, 사건의 당사자인 세 명의 남녀가 각기 다른 증언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세 명은 서로 다른 사람을 살인범으로 모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가 살인을 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우선 세 명중의 한 사람인 도적은 낮잠을 자고 있던 자기 앞을 지나가던 무사의 부인에게 첫눈에 반해 남편인 무사 앞에서 부인을 범하고 그 자리를 뜨려는데, 부인이 두 남자 앞에서 추한 꼴을 당했으니 두 사람 중 결투를 해 이긴 쪽을 따르겠다고 해서 무사와 정정당당히 싸워 무사를 죽였다고 증언한다.

 

두 번째로 무사의 부인의 증언이다. 도적이 자신을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 도적은 바로 그 자리를 떴다. 도적이 가버리고 부인이 나무에 묶인 남편에게 다가가자 남편은 자신을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차가운 눈을 견딜 수 없어 남편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지만 그렇게도 해주지 않았다. 남편의 시선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칼을 손에 든 채 기절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이 죽어있더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죽은 무사는 무당의 입을 빌려 증언한다. 그에 따르면 도적은 아내를 범한 후 그의 아내에게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내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대신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도적도 이 이야기를 듣고 놀래 자신에게 아내를 죽여야할지 살려 주어야할지 물었다. 그러나 그런 틈을 타 아내는 도망가버리고 도적도 자신을 풀어주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혼자 남은 무사는 수치심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 다르게 증언하는 것을 듣고 승려는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된 이 세상이 무섭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건을 중간부터 목격한 또 한 명의 목격자인 나무꾼이 재판정에서 숨겼던 제 4의 증언을 한다. 그는 세 명이 모두 자신들의 약점을 숨기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적은 자신이 남자로서 정정당당히 싸워 무사를 죽였다고 거짓 증언을 했으며, 무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련한 여성으로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편을 죽였다고 거짓 증언했으며, 무사는 아내의 배신과 도적에게 동정을 받은 것이 수치스러워 자살했다고 증언함으로서, 사실은 극한의 상황에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훌륭한 행동을 한 것처럼 사건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 3자인 나무꾼의 증언은 신빙성이 있는가? 사실 그는 사건현장에 떨어져있던 칼을 훔쳤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관점에 따라 객관을 주관화하는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자신을 실제보다 더 훌륭하게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이기적인 인간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는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하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마지막에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는 나무꾼을 통해 휴머니즘의 정신을 구현시키고 있다. 승려가 마지막에 아기를 건네주는 것은 인간성 회복을 의미한다. 영화 내내 인간의 선과 악을 빛과 어둠을 통해 대조적으로 보여준 구로사와 아키라가 마지막에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나무꾼이 아기를 안고 가도록 한 것은 그가 인간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휴머니즘이야말로 <라쇼몽>이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걸작이 될 수 있는 원인일 것이다.